기다리기 싫다고?

 

기다림은 심심함이 아니잖아?  괴로울 것도 없고.  아니, 기쁨이던 걸.

 

어렸을 적에 시골 큰댁에 갔다가 열병에 걸렸어요. 

(덜덜덜덜, 헛소리, 눈도 돌아가고.)
그래서, 면에 하나밖에 없는 전화, 지서의 경비 전화를 이용해서 서울에 기별했어요. 
“어멈이 와서 데려 가야겠수”라고. 
다음날 어머님이 오시는데, 능내 간이역에 서는 중앙선 열차가 하루에 세 번 있거든요. 
첫차부터 해서 때가 되면 뒷동산으로 올라갔다고.  
    --얘는 불덩이같이 펄펄 끓는 놈이 어딜 가?--
    --어딜 가긴, 엄마 오나 보려고...-- 
첫 차에 안 오셨네요.  어, 낮차에도 안 오셔. 
이제 막찬데, 아들이 아프다는데 빨리 안 오시나, 오늘 안 오실 건가? 
그런데...
“아함, 그럼 그렇지.  아무렴 안 오실라고...” 
그때는 눈이 좋았거든요.  십리 밖 마재를 넘어오시는 어머니를 알아봤거든요. 
거기서부터 내달아 뛰는데, 벌판을 가로지르고, 도랑을 뛰어 넘고, 큰 개울은 철퍼덕거리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고, 고무신 벗겨져서 떠내려가는 것 주워 들고 건너서
소내 나루로 가면,
그때쯤 어머님을 태운 배가 한강을 거진 다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엄마~ 엄마 만세!”  (아, 만세는 무슨 만세?) 
이윽고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습니다. 
“너, 다 났구나.” 
다 났지. 
꾀병 부린 것도 아니고, 오들오들 떨며 헛소리하고 허깨비가 보이던 병이었는데,
어머니를 맞이하는 순간 다 났지요. 
큰어머님이 밤에 동서를 급하게 부른 것이 미안했던지, 암탉을 한 마리 잡으셨어요. 
고것 참 맛 좋더라.

 

(물론, 어머니께서 오셨으니까 좋게 되었지만,
오실 것으로 믿고 기다리던 때부터 좋았다고.)

 

얘기가 길어졌네.  이렇게 연결해 보겠어요? 
“속히 오시리라” 하셨는데, 더디 오시네요. 
아무튼, 빨리 오시면 있는 자리에서 뵈올 것이고, 늦어지면 우리가 가서 뵈올 터인데,
그때가 되면 아픈 것 다 낫고, 눈총에 마를 새 없던 눈물이 그칠 것이고,
“거기는 기쁨만 있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영광만 가득 차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