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한 마리 키우기로

 

좌파는 없다

 

좌파 정책?  그런 건 없어. 
그냥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에 취한 점령군의 날뜀이 시들해질 때쯤 되어,
“야, 우리도 모양새 좀 갖추자”라는 폼잡음에
‘바로잡기’, ‘따로 세우기’, ‘뜯어고치기’, 등의 이름을 붙였는데,
개구리 어디로 튈지를 모르는 백성이 불평하는 것뿐이지.

 

사람이란 권력의지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니까,
그건 개인이거나 집단이거나 다 그런 거니까,
그들이라고 해서 뭐 그리 흉악무도한 별종은 아니라고.
오뉴월 한때라는데, 따끈할 때 재미보는 거야 어쩌겠어?
그렇지만 그게 누리(蝗蟲) 떼의 내습이어서 가을걷이를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면,
황폐한 벌판을 내다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떻겠니?

 

나는 왼손잡이.
몰랐지?  몰랐을 거야.
수저나 연필을 쥘 때 오른손을 사용하니까.
막상 공격을 받았다고 방어할 때 보니까, 왼팔이 먼저 나가던 걸.
칼질도 왼손으로 하고.
그저 편한 대로 양손 다 쓰니까, 뭐 ‘왼손잡이’라고 할 것도 없거든.
또, 피아니스트에게야 무슨 듣는 손이 따로 있겠니?

 

                                                             (왼손잡이 포수는 거의 없다.)


 

 

누가 더 날 것도 없지만

 

멍청하고 게을러서 제 밥그릇 지키지 못한 이들을 낫게 여겨서 하는 얘기가 아냐.
또, 늙었다고 아주 기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저들도 다구리 붙어보자고 악다물고 덤비면 탈환할 수도 있겠지.

 

오래 전 얘기.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파괴력에 맞불 놓는다고
“갈아보면 더 못 산다”라고 그랬거든.
그쯤 되면 다 알 만 하니까, 자세한 내용 다시 들출 건 없고.

 

그 해 사월 나는 경기도청 옆을 지나고 있었다.
데모대가 그러더라, “이놈 저놈 다 틀렸다 국민은 통곡한다”라고.
얼마 후 멀지도 않은 해운공사 쪽에서 총소리 나기 시작하더라.

 

이런저런 패거리들이 몇 차례 지나갔지.
맞아, 그렇더라고.
이놈 저놈 다 못 됐다 국민은 분노한다.

 

그래도 마음이 어디 그러니?
새사람들 나서면 새 세상 될 것 같고.
그래서 열 번 속고도 또 한 번 믿어보자는 거지.
그랬던 건데...

 

                      

 

 


아 체...

 

성공한 혁명으로 모처럼 제 세상 만난 이들에게
‘새 세상 누리기’를 사양하는 옛 전우는 얼마나 찜찜한 존재일까?

 

그렇게 떠난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면,
그건 제국주의 반동의 소행이라기보다는
신흥왕조의 ‘수정주의’ 과민증이 주도한 음모가 아닐는지.

 

그거, 그거, ‘영속 혁명’이 위험스러워
트로츠키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기득권 지킴과 같은 맥락 아닌가?

 

                                      

 

 


바위얼굴

 

세습왕조의 왕손을 옹립할 것도 아니고,
구체제의 퇴역장성을 복귀시킬 것도 아니어서,
결국 ‘친애하는 애국 시민 여러분’ 중에서 골라야 되겠는데,
삐죽 솟은 오름들 보니까 벌써 많이 오염됐더라고.
뭘 모르는 주제에 욕심만은 입신(入神)의 경지더라고.

 

거기 그렇게 있어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그래도 그게 그건 줄은 몰랐던 바위얼굴.
저물 녘 햇빛을 받아 더욱 고결한,
뭐 그런 인물 어디 없을까?

 

도리 있나 얼마 동안 이렇게 가는 건데...

 

그런 사람 있겠나,
주체세력이 존경하는 내부인사 같은.

 

‘Mr. 쓴 소리’가 있다고 치고 그런 게 무슨 소용?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는 쥐도 새도 모르게 가버리더라고.

 

그러니, 힘이 있는데 욕심은 없어서
힘은 있지만 욕심이 좀더 많은 이들이 어려워하는,
그런 분 있으면 좋으련만.

 


 

 

 

양심의 파수막 

 

힘없는 사람이 양심 지키기가 더 쉽다면, 이상한 얘기 같지?
그래.

 

힘있는 사람이 양심을 지키기 어렵다면,
밖에다가 파수막(把守幕)을 따로 세워야 하거든.
누구?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등에(gadfly)이었다.
성가시고 고통을 주는 존재이었다.
내버려두기 어려우면?  때려잡는 거지.
그렇게 아테네의 쇠망은 시작되었다.

 

                                                  (Jacques Louis David, 'Death of Socrates')

 

 

 

우리 집 개

 

동네 일 다 참견할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집 지킬 개 한 마리 키우기로 했다.

 

살아있다는 게 더럽게 느껴지는 날,
이놈은 내게 다가와서 몸을 비빈다.

“자 자, 화풀이는 내게 하셔.” 그러듯이.
“아니, 이 더러운 놈이...” 할 것도 아니어서
붙잡고 같이 뒹군다.

 

지키라는 도둑은 안 지키고,
이 녀석은 주인에게 짖기도 하고 으르렁거린다.
“이건 주인도 몰라보고...” 하며 패려고 그러면,
꿀리지 않는 걸음걸이로 나가버린다.

 

아주 떠난 건가 후회막급일 때에,
그놈은 다시 나타나서 꼬리친다.
아, 고마워라.
“체, 네 눈에 내가 꼴같잖게 보이거든...
괜찮아, 물어.  그땐 날 물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