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철 1

 

 

한국 떠나고 일 년도 안 되었는데

꽃 피는 철 다가오니 가고 싶다.

꽃 보러? 그보다는 임? 그런 게 아니고 논을 보고 싶어.

써레질 끝난 무논에 채운 물 위로 내려앉은 산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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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실은 책 소개인 셈인데

관심 없는 사람에게야 이야깃거리도 아니겠지만

하, 책에 담은 논 사진들만 해도 오래 된 술도가에서 풍기는 발효 냄새 같은 그리움이랄까

으앙, 나는 돌아가리라~~

 

{이 포스트에 있는 사진은 책에서 가져온 것.

무단전재이긴 하지만, 그런 양서를 읽으라는 뜻이니까 이해해주시리라.}

 

글. 사진, 최수연 <논 밥 한 그릇의 시원(始原)>

마고북스, 2008년 10월 1일 (2쇄: 2010년 8월 2일)

 

 

 

박근혜 대통령이 동네사람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진돗개 두 마리 이름을 새롬과 희망이라 지었다고.

이를 두고 “합치면 새로운 희망이라는 뜻”이라고 해설하는 항상 친절한 언론.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지요, 희망 접고서야 살 이유가 없는 거니까.

봄에는 새 ‘대통령’-거 명칭 한번 왔다네, 그것부터 바꾸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정착할 수 없지-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움과 희망을 “그래도 다시 한 번”으로 품을 것이다.

농사꾼도.

 

“농부는 굶어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農夫餓死 枕厥種子)라는 말이 있다는데

(茶山의 <耳談續纂>쯤에 나오는 옛날 얘기지만.)

먹고 살아남아야 미래에 많이 거둘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 희망이 양식은 아니렷다.

 

 

농사력에 어디 비는 때가 있던가 농한기가 있다지만

농군은 사시사철 주야장천 늘 힘들고 늘 바쁘고 늘 아프다.

그래도 봄인데, 겨울을 낫는데

아 하루하루 겪어야 할 어려움 뻔할 뻔자이지만

그래도 또 희망 품고 논으로 밭으로 나간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종자 카탈로그를 보며 꿈만 꾸고 이런저런 농사정보만 모으는 사람을 두고 아내는

‘리론가(理論家)’라고 흉본다.

예전에는 각종 종자라도 잔뜩 주문해뒀지만

우리 집 텃밭은 몇 해 세든 사람이 나가지 않으니 묵정밭 되어버렸고

땅뙈기라도 있는 사람 생각나도 관계가 그러니 잘 가꿀 줄 알고 보내기도 그렇다.

 

아 이 나이에 할 줄 모르지만 해보고 싶다고 해서 할 것도 아닌데

논과 밭 그 부드러운 흙을 밟고 만지며 묻히고 싶은 마음이야 흉보지 마시게.

뭐 재미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고

농군의 타는 마음 나눠볼 수 있을지? 겪지 않고서야 알겠어?

 

 

벼농사로 돈 될 것도 아니고

특히나 FTA 이후에는 환금작물과 품종 개량, 유기농 재배로 경쟁력을 높이자는 풍조여서

그 힘든 논농사하는 이들 점점 줄어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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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家月令歌 삼월령에는 “농부의 힘드는(힘든) 일 가래질 첫째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이라기보다 힘든 일들 중에 처음 치러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겠지.

물꼬를 깊이 치고 두렁을 다지는 일로 논농사는 시작한다.

“가래질도 세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그래서 빈 가래로 미리 손을 맞춰보는데 그걸 ‘헹가래 친다’고 한다.

{딴 얘기지만... 삼권분립? 대통령이 專橫하는 한 민주주의가 정착할 길이 없다.

나라를 위해서? 그러면 한 마음으로 손을 맞춰야지.}

 

얼었다 녹았다 하며 고단한 겨울을 보낸 흙은 딴딴해졌으니 그 굳은 것을 풀어줘야겠네.

{그렇잖니, 딴 얘기지만, 마음의 밭도 응어리진 걸 잘게 부수고 녹여 부드럽게 하지 않고서야

사랑 농사도 지을 수 없겠네.}

쟁기질이 시작. 그러고 남은 덩어리는 괭이나 호미로.

 

다음엔? 써레질. 그러니까 물을 채운 무논을 삶고 고르는 일.

삶다? 논밭의 흙을 써레로 썰고 나래로 골라 노글노글하게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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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에서 잘 자란 모는 모내기로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모내기를 하면 농사의 반은 해냈다고 할 만큼 중요한 것.

 

모내기철은 찔레꽃 필 무렵인데

그때 비 내리지 않으면 찔레꽃가뭄.

때 되어 비 내린다는 것이 되도록 돼있는 게 아니고 애타고 속 터지는 일.

그렇다고 하늘 향해 주먹질하지 않더라.

{뻐끔~하고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속말까지야 어쩌랴.}

이래도 저래도 손 놓을 수는 없어

해볼 만큼 하고 갈 데까지 가는 거지.

 

  헌디

  왜 헤매는 겨

  언제는 땅 파서

  돈 된 적 있냐 말이시

  농사꾼은

  날이 가무나 궂으나

  농사짓는 겨

  삼년 가문 논바닥에 꼬창모 심어야 되고

  감탕밭에도 씨앗 뿌릴 줄 알아야

꾼인 겨

   -오도엽, ‘꼬창모’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 실천문학사, 1999-

 

가뭄으로 마른 논에 억지로 호미나 꼬챙이 따위로 땅을 파서 심는 모를 강모라고 하는데,

굳은 땅에 꼬챙이로 구멍을 파고 꽂은 강모가 꼬창모.

그렇게 심은 벼는 비실비실해서 한 마지기에서 한 가마니나 건질까?

{또 샛길로 빠지게 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환경 때문에 시원찮은 애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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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 깊이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얕으면 모가 뜨고 너무 깊으면 생육이 더디다.

 

 

“꽃 나들이에 웬 비?”라고 투덜대지 말고

“이것 약비 맞지요?” 하며 기뻐하기를.

 

 

  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

  금만경(金萬頃)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

  누구한테 말해 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

  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저것 좀 보라고, 나는 몰라라

 

   -안도현, ‘논물 드는 5월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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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쌀 한 톨의 무게 (홍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