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피아니스트의 죽음
어떤 피아니스트의 죽음
Alexei Sultanov: 1969-2005
* 장편(掌篇)이 아니고 장편(長篇)이니까, 아주 시간 많은 분이나 같이 내려가시지요.
돈 들여 크게 낸 부고(訃告)도 아니고
지방신문의 사망 고지(obituary)에 작은 활자로 지나가는 죽음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끝남은 아닐 것이다.
펴지 못했던 꿈을 담은 상자에 리본을 매어 포장하는 손은
사망자의 것이 아니다.
한 삶은 어떤 사랑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크고 작은, 일시적이거나 상당히 지속된 몇 개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적 친분을 맺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경의를 표시하는가에 상관없이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기에 내가 할 말이 없는 것이지,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 기억으로 남는다.
좋고 나쁜, 늘 꺼내고 싶거나 혹은 창고의 뒤편에 방치한 것이든,
일단 대뇌피질에 음각으로 새겨지면 지워지지 않는다.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처럼은 아니던 걸.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알렉세이 술타노프.
그도 별이다.
당신이 몰랐다 해도 할 수 없고.
별은 닿을 수 없이 높은 곳에 있기에,
그래서 보자면 우러러 보아야 하기에,
어둠에서 오히려 빛나기에 별인 것이다.
그렇지만, 별이 좀 많아야 말이지.
보이는 별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인데,
육안으로 뵈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야말로 별은 무수히 많다고 할 수밖에.
별들이 다 똑같이 밝은 것은 아니어서
일등별이니 이등별이니 해가며 나누기도 하는데,
그 밝기라는 게 별의 크기뿐만 아니라
관측자와 얼마나 떨어졌는가에 따라 달라지거든.
그렇지 않겠어?
“도미 도미 살찐 도미”를 벗어난 지 얼마 되었다고
“반짝 반짝 작은 별”을 치게 된 어린 딸이
엄마에게는 엄청 큰 별이라고.
어찌 발음할지도 모르는 명인 대가의 이름은
알 필요도 없는데, 별은 무슨 별?
그래도 그 알렉세이 술타노프가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별 축에 들었다니까.
신동(神童)
우리 동네에서 한참 가르치다가 지금은 한국 가 있다는
한동일 선생도 나이 들어 그런 소리 듣기엔 거북할 때까지
‘신동’이라고 불러줬다.
타쉬켄트에서 태어나서 신동으로 불리던 알렉세이는
대처로 가야 하니까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열아홉 살 된 해 1989년에 반 클라이번 피아노 경연에서 우승하면서
서방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키도 160 cm 밖에 안 되는 귀여운 소년은 아직 신동이었다.
돌아가 봤자 징집, 낙후한 문화환경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니까,
그는 대회가 열렸던 도시 Fort Worth(Dallas에서 50 마일 떨어진)에 주저앉았다.
(일본과 폴란드에서는 그의 인기가 대단했다. 28세 때 동경에서 팬들에게사인하는 자리에서)
그의 음악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부상이 음반 제작과 유수 관현악단과의 협연이고 보니,
그런 기회를 통해서 그의 명성이 자라게 되는데,
어디를 가서 연주하든지 보통은 거의 같은 반응이었다.
열광하는 청중과 평론가의 혹평.
나만 해도 그렇다.
손가락이 분주하거나 몸놀림이 요란하지 않고서도 연주할 수 있다면,
그런 음악이 좋다.
절정고수라면 천변만화(千變萬化)를 한번 손짓에 감추는 것이지
일부러 현란한 초식을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알렉세이라는 ‘애’는 사람들을 벼랑길로 끌고 가서
아슬아슬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악취미가 있었나 보다.
(애니까... 요즘 어느 정치인이 유명 축구선수를 ‘애’라고 그랬다고 혼나는 모양이더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지만, 그것은 애이기에 가능한 ‘넘침’(youthfully exuberant)이었다.
평론가들은 그의 연주를 두고 무모하다느니, 거칠다느니, 덜 익었다느니 그러는데,
미치게 좋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어쩌랴.
아니 이럴 수가
독감으로 “뜨거운 물에 몸이나 좀 담그고...” 하던 그는 일어나다가
현기증으로 쓰러져 머리를 다치게 되었다.
이어 닥친 뇌졸중으로 반신(왼쪽) 불수가 되었고.
2001년 2월 어느 날 그가 31 살 때에 일어난 일.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은 끝난 것인데,
그러면 한 삶도 동시에 끝나는 것인지?
그러기를 거부했다.
아무 불평 없이 재활 운동에 매달리기도 하고,
같은 형편에 놓인 이들에게 그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동기부여자이었다.
그의 아내 Dace(‘돗사’라고 발음함)는 알렉세이를 지성으로 살폈다.
음악원 시절 동무를 큰 것 먹은(경연 우승) 이년 후에 불러서 결혼했는데,
아하, 뭘 모르는 어린 나이에 만나서도 그렇게 끝까지 살 수 있는 거구나...
(얼마나 잘 했는지 모르지만) 첼리스트였다는데, 그런 경력 다 버렸고.
효부열녀니 하여 표창도 하고,
그런 얘기들이 감동으로 몰고 가기도 하지만,
이미 버틸 시기를 놓친 사람들을 가외 부담으로
깐 데 또 까는 사회적 제약은 아닌지?
이 글 쓰고 있는 동안 아내는 ‘One True Thing’을 같이 보자고 부르러 왔다.
장병에 효자 없다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이고,
저 때문에 피곤하게 된 피붙이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서.
할 말 없을 때 “에휴, 무심하지, 너무 하신다...” 해보지만...
(이런저런 일들-- 좋은 일/ 궂은 일, 태어남, 사랑함, 병듦, 죽음--이 가족사를 구성한다.
말기암 환자인 아내/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이 겪는 일을 그린 'One True Thing'에서
메릴 스트립과 르네 젤웨거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미국시민권
나는 그렇다고 치고, 애들은 왜 시들한지
오래 살았어도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법 입국하여 험한 세월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시민권을 획득할 때에 ‘고생 끝’의 감격으로 펑펑 울기도 하더라.
알렉세이와 돗사는 자격 미달이어서는 아니지만 이러저러해서 뒤늦게 취득하게 되었는데,
작년에 새 시민 선서식에서 부부가 모두를 울렸어.
알렉세이가 그저 그런 솜씨로 오른손을 놀리고
돗사가 왼손 파트를 도와주면서 ‘America the beautiful’을 연주했다고.
미국... 미국이 뭔데?
어떤 이에게는 동경의 대상이고,
다른 이에게는 한과 증오의 표적이리라.
그 노래, 그거 하나만은 정말 “왔다”야.
America! America!
May God thy gold refine
Till all success be nobleness,
And ev'ry gain divine.
맺으면서
지난 목요일(6월 30일) 아침 알렉세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루빈스타인(A. Rubinstein, 1887-1982)이나 호로비츠(V. Horowitz, 1903-1989) 만큼
오래 살았더라면...
그건 의미 없는 중얼거림이지?
그저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 만큼 산 셈인데,
모차르트가 시간이 모자라서 뭘 못했던 것은 아니잖아.
누구나 제한된 시간 안에 답안지를 작성해야 되고,
“그만!” 하면 얼른 손떼야 한다.
‘미완성’이란 없고,
다 나름대로 할 만큼 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