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2) - 낭비

 

작년 이맘때, 아직 내 근처에 사람들이 있을 때,
어울려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똑똑한데 주책인--그런 사람들 있어-- 어떤 이가 그랬다.
“저것 한 방이 얼마나 하면 말입니다.  뭐, 큰놈, 작은놈, 쎈놈, 약한놈 다 다르겠지만,
어림잡아 평균 오백 불쯤 한다 말씸야.  에 또, 이제껏, 그리고 남은 것 합해서 천 방을
터트린다면, 오십만 불이 날아간다 이겁니다.  이건 엄청난 낭비라고. 
‘우와~’ 소리 몇 번 지르는데 오십만 불이라...  말도 안돼...(이하, 어쩌구)”
(유구무언, 그러나) 아 정말 김새네.

 

난 낭비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지 못해. 
그래서 사람들 많이 놓쳤어.

 


삶은 낭비

 

낭비할 수 있는 자유!
(에이, ‘자유!’ 하니까 무슨 이상한 시민단체의 요구사항 같아서 취소할게.)

 

낭비라는 말, 거기에 ‘낭’(물결, 방황할 浪) 자가 들어가서
“음, 낭만 말이지...  좋지. 아 옛날에 무교동에...”로 생각이 뻗어나갈는지 모르지만, 보라고.
[낭객] 허랑하고 실속 없는 사람
[낭인] 일정한 직업 없이 돌아다니며 날을 보내는 사람
[낭사] 개죽음
[낭설] 뜬소문
[낭유] 허랑하게 노는 일
이쯤 읊어도 넉넉하겠네.  ‘낭비’는 좋은 뜻이 아니겠네.
낭비는 “헛되이 씀”이란 뜻이다.
헛되이?  썼는데 건진 게 없다는 말이겠지.

 

그러면 보자고. 
삶은 낭비가 아니던가?
쓰기만 했지 벌어들인 건 없고, 힘들여 일했지만 남은 게 없더라고.
그러니 인생살이가 다 낭비 아니겠느냐는...
(남기는 이들도 있기는 한데...  애써 벌지 않은, 벌기는 뭘, 사기 치거나 빼앗은 거지.)

 


사랑은 낭비

 

떠나겠다는 女를 한번 잡아보는 시늉을 하던 男이 소리질렀다.
“내 사랑은 네게 낭비되었어.”
(짜샤, 본전 생각나는 건 사랑 아니었다니까.)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낭비뿐이다.  사랑은 낭비이다.  사랑은 헤픈 것이다. 
다 버리는 것뿐이지 얻는 거라곤 없지. 
그러니까, 냉수 먹고 속차리고, 꿈 깨야 되겠는지?
할 수만 있다면 계속했으면 좋겠더라고.   그때가 좋은 거 아냐? 


좀 구식이 된 말이긴 하지만, 왜 그걸 ‘청춘 사업’이라고 그랬지? 
청춘사업으로 수입 올리는 사람 봤냐고? 
그런데, 인생은 손해볼 때가 행복한 때더라. 
누구를 사랑하게 되면 손해보게 되더라. 
서로 사랑해도, 더 사랑하는 쪽이 더 상처받기 쉽고, 더 손해보게 되더라.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는 손해만 본다.  이윤은 그만두고 원금도 못 찾는다. 
“그 아무개가 자식 농사 잘했어”라는 말도 하지만, 잘된 자식에게서도 본전 뽑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 

그래도, 흐뭇하기만 한 것이고.

 


거룩한 낭비

 

그때 한 여인이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고 사랑하는 님께 부어버렸거든.
“아니 저런, 저런, 저 여자가 미쳤어.  그걸 팔면 많은 가난한 이들을 구제할 수 있을 텐데...”

 

(길게 얘기할 건 아닌데...)
마리아의 마음에는 사람들이 칭찬할 것인가, 비난할 것인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 
다만 그분을 사랑했고, 사랑하기 때문에 바쳤어.  그래서 착한 일이 된 거야.
그리고, 넘치도록 드렸기 때문에 참 잘된 거지. 
사랑은 언제나 넘친다고. 
딱 알맞은 계산, 그리고 야박한 됫박질은 상거래지 사랑이 아니잖아?

 

마리아가 옥합을 깼다는 건 그 몸을 던졌다는 얘길 거라.  심장이 깨졌다고 할까? 
일찍이 그분께서 수혈하셨던 피가 솟구쳐 나오네.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실은 먼저 받은 게 있었다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사랑으로 베푸신 분으로부터.

 

 


좀더 오래갔으면

 

나 좀 오래, 더 많이 손해보고 싶어.

 

그리고, 더 낼 세금은 없지만,
저 불꽃놀이 더 오래 했으면 좋겠다.
끝나긴 끝나겠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끝났다. 가자”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고.
더 터트릴 것 없어도 좀 앉았다들 가지.

 

가기는 가는 건데...
가지 않으면 어떡해, 오늘이 자리를 내어주니까 올날(來日)이 오게 되는 건데.

 

타 없어지는 건 밝히기 위해서이리라.
“Light tomorrow with today.” --Elizabeth Barrett Browning--

 

태양이 조금씩 타 없어지지 않으면, 열도 빛도 없을 거라.

 

그럼 됐네.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게 하나도 슬프지 않네.
이제껏 낭비했기에 한결 넉넉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