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
영혼의 만남이라 해도
John Donne은 그랬다.
“More than kisses, letters mingle souls.”
입맞춤보다는 문자가 영혼들을 더 잘 섞는다고?
흠, 그렇게 섞였다 치고...
영혼을 담은 그릇들이 가까이 있다면?
더 가까이 가고 싶을 거라.
가까워질수록 목마르게될 거라.
Mein Herz ich will dich fragen,
Was ist denn Liebe, sag?
“Zwei Seelen und ein Gedanke,
Zwei Herzen und ein Schlag.”
--EFJ von Munch Bellinghausen--
내 마음이 그대에게 묻고자 한다.
그래 사랑이란 뭔지 어디 말해보시게.
“두 영혼이 한 생각을
두 심장이 한 박동으로.”
그러니까 어떡하자고? 접문(接吻).
산하(山河)도 그러더라
흙은 상하로 움직이면서
뫼를 만들고
그만 못한 언덕도 만들고
골도 만들고
울퉁불퉁해지고
물은 좌우로 움직이면서
꿈틀거리며 굽이치고
넓어지고 좁아지기도 하면서
좁아지면 급히 흐르고
다시 넓어지면 숨돌리고
그렇게들 들썩이고 어깨춤 추며
“수무족도(手舞足蹈)하렷다!”라는 구령이 없었는데도
정말 잘 뛰놀더라
그게 이미 입맞추었기에
흘러가면서도 감싸기에
품었다가 놓아주기에
그래도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울음인가 아니 울림
흥으로 신명으로
스리슬쩍 돌아가더라
얼굴을 맞대고
Birds can do. 벌레도.
생명 있는 무엇이든지.
그렇지만...
사람들은 마주볼 수 있거든.
얼굴을 맞대고.
보통 눈을 감더라마는
뜨면 어때?
갈망이 만족의 눈빛으로 바뀜과
기쁨과 평안을 피차 확인하면서.
바라봄이란
왜 바라보냐 하면,
그대의 눈에 비친 나를 보고
그대는 내 눈에 비친 그대를 보며,
그대 안에 있는 나와
내 안에 있는 그대를
느끼면서,
“그렇구나, 그렇게 됐구나, 그래”하자는 것.
그게 사랑 아니냐는.
(영혼의 교류와 화합이라 해도 그렇고.)
첫 키스와 마지막 키스
할 줄 몰랐으니까,
탐색전이니까,
조심스러우니까,
시시했을 것이다.
불의 키스? 아니고.
그래도 그것 때문에 뭔가 바뀐 듯 하여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일까?
억울한 듯, 그러나 후회하지 않으면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스님이 어찌 그리 잘 아셨으랴 마는...
그게 달콤하지만은 않더라.
비수까지야... 그래도 아픔이긴 하던 것을.
시작은 있었으니까
첫사랑이니 첫 키스니 말이 되지만,
마지막? 그건 모를 말이더라고.
살아있는 동안 무엇이 닥칠지 무슨 짓을 할는지
알 수 없는 것이고,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 채 눈을 감고는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말해주는 것이라서,
마지막 사랑이란 제가 말할 게 못되지만,
마지막 키스란 헤어지는 통과의식을 말함이겠다.
떨어지지만 잘 있으라는 뜻이겠는데,
복을 빌면서 헤어진다? 그렇게 안될 걸.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게 어디 될 법한 일이겠으며,
싫어졌으면 입맞추지 않고 떠날 것이다.
마지막 키스, 그런 게 있다면?
그건 유다의 입맞춤이리라.
그게 왜 그리 가증한고 하니,
친밀함의 원초적 표현을 배신의 도구로 사용하였기에.
그 후... 입맞추며 딴 데 보는 X놈이 늘어났더라.
Primo bacio.
하고 싶다.
나이 이만해지니까
희미해질 시간도 남지 않았고,
이젠 잘 할 것 같고.
많이, 아주 많이?
“딱 한 잔만”이라 했다고 어디 한 잔에 끝나는 것이겠냐 마는...
Besame mucho?
아니고...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 10: 42)
죄송, 음악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Bring your own music.
간들간들 조수미의 “Il bacio”이든지, Pour un baiser, Besame mucho, 혹 뭐든지.
따라 흥얼거릴 만한 쉬운 거면 더 좋겠네, 가사는 없어도 괜찮을 듯.
“Music is love in search of a word.” --Sidney Lan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