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한이
구름 한 점이라도 걸쳐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그게... 알면서 그런 거겠지.
시라는 그릇에는 다 들어갈 게 아니니까,
그냥 쑤셔 넣으면 절창에선 멀어지니까.
세부는 챙기지 않으니까 ‘덜된 집(未堂)’이라고 그랬을 거야.
국전 심사에서 밀려난 것들 따로 모은다면 말이지,
(흥행 규모로 말하는 건 아니지만) Off-Off Broadway 같은 것 말야,
그런 데에서라면 내 하나 할 말 있지.
산문이라서 가능한.
푸르기만 하면 푸름을 알 수 없다는 얘기 말야.
(그러니까, “한 점 부끄럼 없기를”할 것도 아니라는.)
푸른 하늘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그 위에 흰 구름이 떠 흐르기 때문이다.
고려 사람들은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은 느꼈어도 흰 구름의 빛남은 알질 못했다.
인간은 하늘의 섭리에 그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늘의 섭리를 지배하는 것은 푸른 하늘이 아니라 흰 구름이다.
구름이 개이면 해가 비쳤고 구름이 몰려들면 비를 뿌린다.
(정한숙, ‘백자도공 최술’)
그러니 어쩌자는?
그 쪽빛에, 눈 시리게 하는 푸른 하늘에 눈가리개 하나쯤 마련하자는.
그늘에서야 해를 바라볼 수 있지 않겠냐는 이치.
모처럼 만난 사람이 그러더라.
--읽혀지지 않는 시는 잊혀지는 시야.
그래서 그랬다.
--읽혀지지 않는 시를 쓰지만, 만나면 누구라도 좋아할 것 같은 얼굴 아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낭비했고, 사람도 얻지 못했다.
다시 ‘백자도공 최술’로.
“사기그릇이란 사기장이 취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세......”
“기물의 색조나 형태란 언제나 시류를 따르는 법일세.
사기장이나 화청장이는 그것을 명심해야 하네......”
예전에 돼지 대가리에 푸른 잉크로 찍힌 ‘검사필’ 도장 알아?
동네에서 잔치한다고 잡을 적엔 그런 것 없어도 된다고.
사옹원(司饔院)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저 남도 어디 가마에선가 유출된 것,
팔자는 것도 아니고 제 집에서 쓰자고 막 뽑아낸 것 있지?
알 만한 이는 알아주더라고.
내 사랑은
그랬잖아, 티 정도가 아니고 흠이 있어야 한다고.
흠이 흠으로 나타나지 않자면 조금 망가져야 할거라.
좀 흐리고, 수초도 끼고, 미적지근한 물처럼,
그래서 빙어 같은 건 없어도 되지만, 잡어가 많이 꾀는.
그렇게 되니까 사람 고를 수 있겠던데.
뭐 내가 고르는 게 아니고 오더라고.
“O casta diva~” 그럴 것 없고(있기는 하나 뭐...),
‘물레 감는 그레트헨’이면 안 되겠나 싶네.
(그도 어디 흔하기야 하겠냐만.)
일부러 다툴 건 아니지만,
(뭐 다툼이 좋기야 하겠어,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지.)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니고,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긴장이 쳐지고 주저앉지 않도록,
자진모리로 갔다가 적막의 휴지에 이를 때까지
팽팽해야 하니까.
다툼이 부담이 아니라 고름(均)과 어우름(和)이 되는.
그게 실은 내 안에 있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싸이케(psyche)가
끌고 밀리며
이해하고 동의하고
다투며 사랑하는 것이리라.
Honey
(내 모를 얘기지만) 등려군이 불렀다는 ‘첨밀밀(甛蜜蜜)’이란 노래가 있다고?
“꿀처럼, 송이꿀처럼 달다”(시 19: 10)는 뜻이겠네.
정말 단가?
달기만 하면 달지 않던 걸.
그냥 단 건 물리더라고.
그래서 애인끼리, 부부끼리 “Honey~”라고 부르는 이곳 사람들이
빨리 헤어지는 걸까?
셰익스피어는 그랬다.
“헤어짐이란 그토록 달콤한 슬픔인 것을(Parting is such sweet sorrow).”
그런가? “쏴~” 하면서도 달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불안에서 벗어나고는 그렇게 얻은 평안으로?
죽음도 그렇지 않겠는지...
하기야 ‘죽어감’이 누추해서 그렇지,
죽음 자체는 내가 치다꺼리할 일이 아니니까,
죽음은 기꺼이 벗어남이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었고...
그건 쥴리엣이 로미오에게 밤인사로 한 것.
(굳이 해석하자면...
잘 자요 내 사랑, 이렇게 헤어지긴 정말 싫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또 만날 거잖아...
헤어지면서부터 난 기다려져, 당신과 다시 만날 시간을.
뭐 그런 얘기.)
아무렴 이별이 좋겠는가?
재회만 보장되면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짧은 기다림은 달콤하기도 하고.
한이
(한이? 그래도 있는 자리가 ‘조블’인데, 천적 같은 신문사 아이디를
목소리에 분칠하고 부르는 것 같아 좀 그렇다.)
“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라고 그러긴 했지만,
‘이’는 뭐 뜻이 없는 거니까,
그녀의 이름은 그냥 ‘한’이다.
한?
맺음과 맺힘으로 생긴 아픔의 고임이란 뜻이 아니고,
그래서 풀음이나 풀림을 기다릴 것도 아니고.
한은 그냥 있는 것, 그냥 좋은 것.
뭘 해서가 아니라 ‘그냥 거기 있음’으로 좋은 것 있지?
꽃처럼.
꽃은 누굴 기쁘게 하기 위하여 뭘 하는 게 아니잖아?
뭘 해서 기쁘게 한다는 건 피차 괴로운 일, 때로는 속이는 것.
한은 하나 뿐, one of the kind라고.
그렇지만, ‘한없는’이라는 말도 쓰는 걸 보면 ‘엄청 큰/ 많은’이라는 뜻도 있겠네.
한강, 한길도 그런 거겠다.
한 방 쓰는 한 몸이면 ‘같다’는 뜻이겠고. 너도 한 패지?
한밤중, 한여름은 ‘가운데(中, 때로 盛)’라는 말이고.
“한 두어 달 됐는가...” 할 때는 ‘대강’, ‘~쯤’이라는 용례이겠다.
그렇다고 치고, 애인 이름으로 한?
그게 이런 얘기.
딱 뭐라 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안-보통’이거든.
그 정도가 아니고 굉장하거든.
어디 가면 또 있겠니, 하나뿐인데.
어찌 그리 들어맞는지, 정말 ‘딱’이구나.
그럼 된 거지.
맵씨, 마음씨, 솜씨, 말씨
네 씨를 제대로 갖추었으나,
그거야 여기서 자랑할 것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