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벗어나서
百花爛漫(백화난만)이라 좋은 때라도
이 세상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필 수는 없는 거야.
아 그래서 다행이지 한 날 피듯이 한 날 지고나면 남은 날들은 어떡하라고?
꽃 없다고 세상의 끝도 아니데.
꽃보다 더 고운 잎이 따라올 것이니.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인데 뭘 그리 좋아하느냐?”고 곧잘 댓글 달던 친구
어디서 무얼 하는지 발길 끊었네.
잘 있으면 됐고.
訃音(obituary) 자주 전해지는 나이.
두 친구가 한날 심장마비로 갔다.
山友會 소식과 부인과 함께 나다니는 일상을 거의 매일 이메일 대량유포로 전하던 친구
또 하나는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좋은 크리스천으로 소생에게도 관대했던 친구.
알던 사람은 알고 지냈으면 좋겠어.
소식도 자주 전하고.
오래 전에 가셨고 아 나도 어머님만큼 살았는데
오늘은 어머니 생신.
그래서 특별히 차린 건 아니지만 마침 딸도 와있고 해서 아침상 한식으로.
오리가 물갈퀴 바삐 놀리듯 풍금 페달을 밟으며
“하늘 끝까지 다다랐느냐 이제는 뵈지 않네 화창하고 따스한 봄날을 노래하자 종달새야”
(Believe me, if all those young charms)를 돼지 멱따는 소리로 질러댈 때에
허밍 소리가 따르는 것이었다.
“응? 엄마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아?”
{하여간 김새게 만드는 데에 일찍부터 도가 튼 녀석의 Op. No. 9.}
St. Patrick's Day이기도 해서 장미와 더불어 oxalis-한국에서는 ‘사랑초’라고 한다며?- 화분도.
Ireland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그건 다른 나라 얘기고, 우리는 그저 ‘草綠의 귀환’이라 해두자.
아 이 맘에 안 드는 열대성, 사막 기후에 있는 작은 수목원에 다녀왔다.
한국 같기야 할까마는 주일 오후라 그런지 賞春客이 많았다.
花蘭春城(화란춘성)하고 萬花方暢(만화방창)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山川景槪(산천경개)를 구경을 가세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
그렇게 싸돌아다닐 건 아니고
“何時泛碗花(하시범완화)”라는 구절, 皇甫苒(황보염)이 벗에게 차를 보내며 적은 글
“언제쯤 막사발-찻잔-에 꽃잎을 띄우랴”가
“그때 좋았어”의 기억으로 “그런 때 다시 한 번”을 꿈꾸게 한다.
이건 주워온 사진
꽃들의 競艶(경염)
미인들 모아놓으면 그래 좋아,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
그런데 그렇더라
예쁜 꽃들 따로 없고 나름 다 예쁘지만
선택하니 더 좋아하게 된 것, 더 좋으니 정말로 더 고운 것.
고운 건 고운 것,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잠 31:30) 할 것 없지.
그런데 곱지 않은 것도 곱다? 어떻게?
전성시대 지난 영자 같은.
한번 좋아했으면 내처 좋은.
한물갔기에, 시들었기에 추레한 게 아니고
좋기는 한데 좋아할 수 없는-선택의 원리 때문에- 것들이 에넘느레하니
그저 그렇다.
그 별에 남겨두고 온 장미를 생각하며 꽃길에서 벗어나다.
하하, 초록 세상은 또 워쩐다냐?
아기 첫 이 같은 새 잎, 그리고 “할로, 츄잉검 기브 미” 하며 Jeep차를 따라가던 아이들의 손.
도토리에서 돋고 나서 첫 해?
-넌 이담에 커서 뭐가 될래? 장군? 대통령?
-그거야 그때 가서 봐야 알겠어요. 아무래도 큰 참나무가 되겠지요.
“그래 똑똑하구나. 소녀가 자라 여자가 되듯 말이지. 그런데 참나무라는 나무는 없단다.
그건 네가 인류가 되겠다는 말이나 같은 거란다.”라고 일러줄 필요 없을 것이다.
정체성의 자각? 철들면 알게 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