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재미
‘라특’을 너무 맛있게 먹다가,
그러니까 두꺼비가 혀를 내어 파리 잡아먹듯
흘러내리는 면발을 혀로 말아 올리다가,
그만 혀끝을 깨물고 말았다.
아얏~ 핑~ 돌다보니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아픈 기억의 앙금이 떠오른다.
가외수입
그게 뭐 ‘자리’ 때문에 생기는 뇌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어떻게 사례하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결혼주례에게 인사 치른다고 ‘시대’표 와이셔츠 한 장 정도를 들고 왔다.
차라리 복‘떡’방의 찹쌀떡이라도 가져오면 나눠 먹을 텐데.
(계피가루 묻힌 것이 보통 내 차례. 거긴 손들이 안 가대.)
뭐 그쯤 되어도 가외수입이었다.
HLKY에서 방송설교 마치고 나오는데 봉투를 주더란다. 출연룐가?
“얘들아, 가외수입이 생겼구나. 아버지 돈 많다. 다들 나가자.”
그래서 요리점으로 갔다.
(요리점은 무슨... 육교 밑 ‘OO집’이었다.)
아홉 식구가 둘러앉자 호기롭게 외치는 소리.
“여기 불고기 4인분~”
으응? 분위기가 어둡네, 왜 그러지?
“그 돈으로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해먹으면...”이 이유였다.
폼잡으려던 분은 김 푸악~ 샜고...
우리는 어려워서 젓가락이 나가지 못했고.
결국 몇 점은 빠직빠직 소리를 내며 숯이 되고 말았다.
고기 먹은 것 같지 않은 얼굴로 일어날 때...
이젠 외할머니 차례.
고기는 입에도 안 댄다는 어른께서 하시는 말씀.
“어라, 내나 먹을란다. 먹는 것을 와 버리노? 같잖다, 쯧쯧.”
나는 투덜거렸다.
“가외수입이란 없어야 돼.”
먹는 재미
식도락(食道樂)? 능력 있으면 하는 거지, 욕할 것도 아니다.
사는 재미 중에 먹는 재미도 꽤 큰 몫일 테니.
내게 무엇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그때 가서야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아, 뭐라고 그래야 할지 미리 준비해둘 걸.”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좋아하니까.
내게도 먹는 재미가 있지만,
‘무엇’이 그 재미를 더하지는 않는다.
맛은 차치물론(且置勿論)하고 듣도보도 못한 ‘양(洋)식’을
서울 가면 많이 ‘보게’ 된다.
한국에서보다 북미주에서 산 햇수가 많거늘.
그래도 대접하는 이 생각해서 ‘비싼’ 음식도 잘 먹는다.
남기는 걸 못 봐줘서 ‘우아’와 거리가 멀어질 때가 가끔 있지만.
지방에 한 아우가 있어 기회 되면 지극 정성으로 못난 형을 대접한다.
한 번은 ‘최부자집’에서 한 상 거하게 차려 내오는데...
“으응, 이게 뭐지?” 싶은 것들이 나오는 대로 싹쓸이,
그러니 쇠로 만들었다고 견디겠는가.
다음날...
몇 차례 강단에 서야 하는데, 최후의 일각까지 들락거렸다.
그리고 저녁엔 기장 대변항에서 개불을.
(어휴, 생긴 것도 그렇고, 그릇을 씻기나 했겠나...)
단단히 탈이 났는데, 청국장으로 ‘풀라’고 해서 또.
뭐, 나는 ‘싸우며 건설한다’ 식으로
배 아파도 먹는다.
너 좀 맞아볼래?
그러니 뭐 먹는 ‘품위’에 관한 한 나는 무급이다.
어려운 자리에 가도 눈치로 따라 하면 될 것이고,
값이야 내가 따질 게 아니니까.
못 견디는 것?
애건 어른이건 밥투정하는 것 보면
머리에 전깃불로 떠오르는 말이 ‘귀싸대기’이다.
“좌우 왕복으로...”
그럴 수 없으니까 어금니를 지그시 눌러주기로.
때 되면 나도 멋 부리고 싶다
“멋대가리 없는 데도 멋이 철철 넘친다”는 말이 있긴 한데...
알아 나도, 내가 멋대가리 없는 줄.
맛을 모르는 데야 무슨 멋을 알려고.
나이 들고나니까
(뭐 능력은 없지만)
멋들어지고 싶다.
누가 그랬다.
“지금 철관음을 들고 있어요.”
내가 그랬다.
“아니, 보살이라면 여리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쐐(쇠, 鐵)는 무슨...”
무식의 극치.
예전에 서울 거리에는 ‘도라지 위스키 시음장’이란 게 흔했다.
지금은 초의선사까지 들먹이는 곳을 시음장이라고 하는가?
모를 말이지만, ‘다선일미(茶禪一美)’라는데...
산사로 가는 친구에게 침침한 눈에 ‘토룡(土龍)체’로 뭘 그리기도 그래서
그냥 이렇게 보낸다.
湖上畵船風送客
江邊紅燭夜還家
今朝寂寞山堂坐
獨對炎暉看雪花
(蔡襄, ‘六月八日山堂試茶’)
생목이 오르고 물이 킨다. 응~ 왜?
아, 라면을 먹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