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소성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군사정권에서 문교부장관도 하셨던 어떤 힘없는 아저씨가 강사로 나온 자리.
‘휴머니즘’ 강의를 할 때이었다.

 

“인간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 그렇겠다.)
“인간은 모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무한한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을 지녔습니다.”
(그래, 그도 그렇겠다.  그렇지만 괜히 그가 얄미워 한번 틀어보기로.)
“샘요, 질문있슴다.”
(지금 이렇게 쓰지만, 그때에야 얼마나 공손한 투였겠는가.)
(그는 ‘까짓 놈이 질문은 뭐...’라는 불쾌함을 떫은 목소리에 잔뜩 담고 허락했다.  “에, 무슨...”)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과 ‘적응’이라는 성질은 상충하는데요.
북극곰은 그 털과 피하지방으로 추위를 견디면서 ‘적응’하지만,
인간은 이글루를 짓고 불을 피워가면서 기존환경을 부정하고 ‘개조’하지 않습니까?”
그분은 왔다갔다하며 잠시 뜸을 들이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개조는 적응의 한 방편입니다.”
지당한 말씀이고말고.
(그러나, 그때는 한참 건방떨 때였으니까, “우물쭈물 둘러대긴...”으로 투덜투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제 장마 걷히려나... (지난 32년 동안 살지 않은 곳 얘기)
비가 좀 와야 할텐데...  (여기, 견디며 사는 곳 얘기)

 

백 도 넘는 날이 계속된다.  [계산에 취미가 있으면, C = (F-32) x 5/9]
비도 오지 않아서 가축 사료로 쓰는 옥수수 벌판이 누렇게 되고 말았다.
(기우제 지내는 제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기도했다.  비 내려 주십사고.)
아침에 한번 야단스럽게 쏟아졌다.
해갈에는 어림없지만 그런 대로 숨 넘어감은 막았다고 할는지.

 

그런데, 온다면 이리 쏟아져야 하는 것이냐?
꽃잎이 감당할 만큼 가벼운 몸짓으로 춤추듯 내려오면 안 돼?
꼭 찢고 부수듯 퍼부으며 강풍을 동반해야 하냐고?

 

사람이니까 물음표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자의식이란 결국 물음표를 붙이는 작업이니까.
그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느낌표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왜냐고 묻는 동안에도
비 올 것이면 비 오고
볕 날 것이면 볕 날 것이다.
한 쪽에서 물난리를 겪는 동안
다른 쪽에선 개인 하늘을 원망스런 눈으로 치켜볼 것이다.

 

                         

 

 

그러니 어떡하자고?

 

운다고 비가 안 오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그렇더라.
뭐 지난 다음의 얘기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사 반 으시댐 반으로 하는 얘기지만,
뙤약볕 견디기 어려운 때쯤 되면 그늘이 들고,
이렇게 빛보지 못하다간 한번 펴보지도 못하고 죽는 건가 싶을 때쯤 되어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말 듣지도 못하였느냐”라는 천둥소리와 함께
햇빛이 억수로 쏟아져 내리더라는.

 

다시 묻지만, 그러니 어떡하자는?

 

참자, 어려움은 지나는 것이니.
견디자, 있는 것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뭐.

 

자전거 탄 아이가 지나가든지, 마차가 지나가든지, 전차가 지나가든지
다리는 그 무게를 견디도록 만들어졌으니까.

 

                                                                                                              

 

 

고됨과 아픔이 없고서야 기쁨을 알 길도 없을 것이고.
“La joie venait toujours apres la peine...”
(기억나?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그럼 우리 비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겠지?

 

           

 

 

 

수동적인 저항

 

한여름에 장마 오는 줄 알면서도 살면 사는 것이고 싫으면 떠나는 것이고,
더위를 견디지 못하겠다면 북쪽으로 이사가면 된다.

 

그렇지만, 장마 때문에 벼농사가 가능한 것이고,
그렇게 물 받아둬야 식수니, 공업용수니 확보할 것 아닌가.
그러니, 장마도 대비해서 피해를 줄여야 할 것이지,
장마가 없으면 그도 문제이겠네.

 

다 이런저런 환경에서 이렇게 저렇게 얽혀
사는 길 벌어먹는 길 찾아 살면서
“그저 그만합니다.” 하자고.

 

그 왜 두 아들 둔 어머니 얘기 말이지...
비 오는 날에는
“우리 우산 장수 아들 오늘 대목이겠네” 할 것이고,
고이 적삼 밑으로 땀이 줄줄 흐르는 날이면
“에유 부채 장수 아들 오늘은 매상 좀 오르겠구나” 할 것이고.

 

그래 뭐 옮길 수 있으면 옮기는 건데,
북쪽으로 가서는 그러더라.
“이렇게 추워서야 어디 사람 살겠어?”

 

피할 수 있으면 피해.
견딜 수 있으면 견뎌봐.
즐길 수 있으면? 
(야, 그거야 뭐 말할 것도 없지. 얘기가 길어진 게 왜 그랬겠니?)

 

 

 

 

 

바꿀 수 있다면

 

피할 게 아니고
떠날 게 아니고
바꿀 수 있다면?
바꾸면 좋지.
(내가 스무 살 좀 지나 “개조...”니 하며 잘난 척했던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 바꾼다는 게 개선이 아니라 개악(改惡)으로도 되더라고.

 

(예를 든다는 게, 그게 좀 그런데, 일단 한숨 좀 쉬고...)

 

그들이 더 깨끗해서, 더 똑똑해서가 아니었고,
그 지리멸렬한 구체제, “이젠 그만 좀 해먹어라” 라는 말 들어야할 이들,
그걸 피하고 싶었던 거라.
‘표’의 권리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런 마음이 꼭 결과로 나온 건 아니지만,
썩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서도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만 해도 되겠지?)

 

아침에 ‘바꿀 혁(革)’자 한 자 써놓고 들여다보다가
“아냐, 그건 아냐”라고 그랬다.

 

돼먹지 않은 사람일수록 바꾸겠다고 그러더라.
제가 아니라 환경을.

 

불편해도 그냥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멜빵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렇다 치고,
왜 한복 바지에는 허리띠가 흘러 내려가지 않도록 끼우는 고리 하나 달지 못했을까?
뒷간에 가서 앉을 때마다 목에다 걸었을 텐데.


 
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도라고 알려져 있는 글이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은혜를
    바뀌어야 하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것과 저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잠깐이니까

 

(내가 어디 가본 데가 있어야지, 들은 얘긴데,)
밀라노 대성당에는 세 아치로 된 문이 있다고 그러더라.
그 첫째 문에는 장미꽃 문양(文樣)과 더불어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둘째 문에는 십자가 조상(彫像)과 더불어 “모든 고통은 잠깐이다”라는,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어렵지?
어렵지만, 잠깐이니까.

 

손해는 보겠지만, 망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나가면 되니까.

 

장마.
장마보다 긴...
잠깐이니까.


견딜 수 있지요?

 

 

가소성

 

가소성(plasticity)이란
그건 변화무쌍을 강조한다기보다
외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일 겁니다.

 

테라 코타(terra cotta), 사기그릇...
불로 구워냈으니 형체가 그렇게 되었지만,
그게 다 흙 아니겠습니까?
점토의 덩어리가 찌그러졌든지 반듯하든지 흙은 흙이지요.

 

사람들, 그들이 사는 마을들이 많이 망가졌다지만,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도 못 다한...  주절주절

 

슬슬 산보하는 기분으로, 그저 한 모퉁이만 돌자는 것이었는데,
그렇지요, 농담하듯 시작했지요?
조금 격해지고 호소하듯 경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려울 때 외국으로 도망갔던 것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진작 돌아가야 했는데, 가고 싶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형편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Someday over the rain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