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 Away (2)
시간, 너는 뭐냐?
‘절대시간(absolute time)’이란 없고,
관측자에 따라 시간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무운장구’라는 띠를 두르고 지나 전선에 투입될 삼돌이가 꽃분이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
내일이면 십 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이가 감방에서 자는 마지막 밤과
어떻게 같은 속도로 흘러가겠는가?
켈리(Helen Hunt 분)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시계를 척은 간직했다.
그 회중시계의 뚜껑에는 켈리의 사진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시계는 가지 않았다.
오래 전에 멈추었던 것.
척에게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지만,
희망과 동경과 사랑은 고여있었고, 그의 켈리는 그대로 있었지만,
켈리는 흐름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탔고, 척은 사라졌다.
영웅의 귀환을 환영하는 파티, 그리고 켈리를 만나기는 하는데...
그때 그녀가 아니라니까, 남의 아내가 되어...
왜 이런 구질구질한 ‘이녹 아덴(Enoch Arden) 얘기’가 계속 나와야 하는지?
몇 일 후 출장에서 돌아오면, 그러니까 세밑(New Year's Eve)에 그들이 만나면,
그땐 날짜 잡는 일만 남은 거였다.
그렇게 되기로 되었었는데... 길어야 닷새 후엔.
그리고 섬에서 1,500 일이 지났고.
그때 그랬잖아?
“어머님, 늦어도 백 일 안에는 돌아오겠습니다.
코쟁이들이 추위를 타서 이런 혹한 속에서는 싸우지를 못하거든요.
날 따뜻해지면 돌아와서 중공군 물리치게 되니까...
그때까지 어머님 몸 성히...”
그렇게 떠난 후 반 세기가 흘러갔다.
어머니가 기다리지 않으셨는가?
내가 일부러 돌아가지 않으려고 그랬나?
무슨 시간이... 55년이라는 게...
이게 뭐 싸구려 장난감 시계로 잰 것도 아니고...
그럴 줄 몰랐던 거니까
그때, 중3쯤 되어 영작문 시간에
[should + 현재완료(have + p.p.)]라는 문형을 배웠지.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남에게 말하면 책망, 주어가 일인칭이면 후회를 나타내는.
회사에서 출장 지시가 떨어졌어도 안 가자면 핑계를 댈 수 있었는데...
그 비행기를 타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그런 생각한다고?
버스 지나고 손들기.
(고리 적에 마음좋은 시외버스 운전수는 백미러로 보고는 서서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우주선 출발한 다음에 돋보기를 집에다 두고 왔다고 내려가자면?
그리고, 척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는 다른 이의 기대보다 더 성취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애구, 나야 뭐 MUA, most underachieved award로 빛나는 인생이었지만...)
그럴 줄 몰랐던 거지.
뭐,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다 모르는 거지.
그래서 테러리스트와 한 비행기를 타기도 하고,
wrong time, wrong place에 나타나게 되는 거지, 하필이면.
그러니, 사람의 갈 길이 제게 달려있는 게 아니구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잠 16: 9)
그렇다면 사람은 끌려만 다니는 것일까?
안 풀린 인생에 대하여 그는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운명은 별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니까, 제 안에 품고 사는 거지.
(Destiny is not in stars; it is in a man.)
그러니까 척은 외딴 섬에서 벗어나야 했다, 제 힘으로.
음, 옛적에 “No man is an island.”이라는 격언도 배웠지.
그래 인생은 고도(孤島)가 아니니까.
아, 잊을 뻔했네, 척(Chuck)의 성이 노랜드(Noland)였어.
No land.
그런 줄 몰랐던 거라도 책임은 제게 있는 것이고,
돌이키는 것도, 벗어나는 것도, 회복하는 것도 제가 할 일이고.
그렇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라는 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
에고, 우린 도덕 교육 하나 단단히 받았다.
갈림길에서
켈리는 돌아갈 이유였다.
가면서 바라보는 목표이었다.
살아서 돌아가면 켈리는 보상이었다.
살아서 돌아갔는데... 켈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랑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일까?
그래서 살 의미도, 가치도, 목표도 사라지는 것일까?
또 다시 갈림길에 선다.
그때는 차선을 잘못 들어섰기에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가 없었다.
뒤차는 빵빵거리고, 교통순경은 눈알을 부라리고, 그저 앞차 따라 가는 수밖에.
이제는 잠깐 방향을 가늠하느라 섰는데,
네거리라도 한가하니까, 누가 빨리 가라고 압력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서 갈까?
가만, 다른 선택의 가지(option)가 있지.
그만 갈까!
그건 안될 말. ‘우선 멈춤’ 사인이니까...
거기서 퍼질고 앉을 순 없지.
그때 픽업(pickup truck)을 몰고 한 여인이 나타난다.
“당신 길 잃었구나(You are lost).”라고 인사하며.
그는 네 가지 방향이 어디로 뻗었는지를 일러주고 떠난다.
가슴이 쏴~ 하네.
아휴, 왜 잡지 않고 그냥 보내는 거지? 얼마나 예쁜데... 그 밝은 웃음이라니...
(천사하고는 살 수 없는 거지? 길 가르쳐 주고 떠나는 존재.)
그래,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해서 생각할 건 아니고,
가야 할 길을 찾아야지.
일을 마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