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역에서

  

최명희, 혼불...

이 나이에 대하소설을 읽기는 좀 그렇거든요.

다른 할 일도 많고, 전공도 아닌 어떤 주제에 몰두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러니 전5부 10권의 대작-그것도 작가가 암으로 일찍 가지 않았더라면 더 뻗어나갔을-을

쉬지 않고 읽어내기를 시도하지는 않으렵니다.

그래도 신동아에 연재할 적에 더러 띄엄띄엄 힐끗거리고서도 많이 박수쳤거든요.

그분이 숨겨진 보배 같은 우리말을 캐고 지킨 열정과 그래서 쌓은 공헌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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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최명희의 자취를 찾아다닌 건 아닌데, 전주와 남원에 있는 혼불문학관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 서도역을 지나칠 수는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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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최명희를 돌아보자고 얘기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서도역-구 역-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작은 예배당이 하나 있는데

그 앞에서 모종삽을 손에 든 채로 허리를 펴던 목사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달리던 차는 그냥 지나가는데 제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자 그분도 엉거주춤한 채로 꾸뻑 했습니다.

“뉘신데 날 알아보고...” 그런 의문이 담긴 눈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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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선 후에 걸어서 돌아가 그분을 뵈려고 했습니다.

그분은 작은 비닐하우스 뒤에서 할머니 한 분과 쭈그리고 앉아 담소하고 계셨습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실까? 간간히 들리는 단어로 미루어 보건대 농사에 관해서인 듯.

쉬이 끝나지 않을 기미.

그런데 어떻게 말을 붙인담? 너 지금 호기심으로 다가선 거지?

뻘쭘하니 서서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 작은 예배당에는 도대체 몇이나 들어갈 수 있을까?

열 명이라 치고, 그들이 모두 헌금은 할까? 주일마다 천 원? 그런 저질 생각.

창에는 어디서 오려다 붙인 종이쪼가리가 성화라고 붙어있습니다.

{‘대성전’이라면 유럽 제 스테인드글라스가 오묘한 빛의 효과를 낼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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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성전(temple)’이라는 말 자체가 개신교 전통에서는 거북한 개념이거든요.

‘하나님의 집(Beth-El)’은 성도의 몸과 삶입니다.

땅의 풍요와 형상의 아름다움으로 채운 건물은 바알의 신전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들은 교인들을 착취하여 화려한 건물이나 지으니 말입니다.

 

성도의 회집장소는 굳이 말하자면 ‘예배당’이지 ‘성전’이 아닙니다.

이건 제 상상일 뿐이지 아마도 사실과 다르겠지요. 저 비닐하우스를 두고 해보는 생각인데...

봉급이 넉넉지 않은 분에게 저 하우스에서 나는 푸성귀로 반찬이나 하라는?

아니 뭐 그걸로 살 수는 없을 테지.

그리고 그깟 소출이나마 ‘성직자 전용’이 아니라 예배 후 애찬에 쓸 쌈채를 마련키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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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목사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햇볕에 그은 얼굴이라 나이 들어 뵈지만 저보다 스무 해쯤 아래일 것입니다.

성품, 신앙, 말씀의 능력, 다 모르지만,

밀레의 '만종'이나 박수근의 그림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밴 궁기와 고단함 가운데서도

풍기는 경건과 진실을 엿본 듯해서요.

 

안락한 월급쟁이 생활이 부끄러워 일찌감치 접었었지요.

이런 환경에서라면? 다시 해보고 싶어서요...

고달프고 쓸쓸한데도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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