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아, 네 승리가 어디 있느냐? (1)
지나간 ‘영미 시 산책’ 뒷자락을 보면서
검색 엔진을 헤매던 중에 나온 이름: 장영희.
한국 여행 중에 두어 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때는 한참 치료받으실 때니,
가족들이 이용하는 전화번호가 아니라면 접선이 쉽지 않았으리라.
투병 중에 격려도 드리지 못했다.
조선일보에 지난 일년간 연재되던 ‘영미 시 산책’이 끝났다는 기사를 뒤늦게 접했다.
인기 연재소설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즐겨 읽었다고.
마지막 회 분(5월 30일)은 Walt Whitman의 ‘Song of Myself’에서 골랐다.
인용구의 마지막 절 딱 하나만 뽑는다면,
“나는 어딘가 멈추어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가 맞겠는데...
I stop somewhere waiting for you.
어딘가가 어디냐고?
에반젤린과 가브리엘처럼 스쳐가기만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나의 노래‘가 연가는 아니지만.)
그 전 회(5월 26일)는 John Donne의 ‘Death, Be Not Proud’이었다.
“죽음아, 잘난 척하지 말라니까” 쯤으로 옮길 수 있을까.
마지막 절.
짧은 한 잠 자고 나면 우린 영원히 깨어있게 된다고.
그러면 죽음은 없게 된다고. 죽음아, 너나 죽어라. (사역)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네까짓 게 뭔데?
죽음아, 뽐내지 말란 말야, 더러는 널 두고
대단하다고 두려운 존재라고 그랬지만, 아니라니까, 넌 아냐. (사역)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ed thee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t not so;
(.......)
말로는 무섭지 않다고 그러는데...
괜히 “안 무서워, 그까짓 게 뭔데, 난 하나도 두렵지 않아...”라고 자꾸 떠들면,
그게 무섭다는 얘기 아닌가?
밤에 숲길을 걸으면서 씩씩하지 않은 목소리로 노래하듯이.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존 던의 생애에도 영욕과 고락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주변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네 살에 아버지를, 나중에는 의지하던 형을 잃었고,
그의 아내는 열두 번째 아이(사산)를 낳다가 33살의 나이로 죽었다.
일곱 아이를 건졌으니, 그걸 어디 ‘배메기(半打作)’라고 할지?
(질병 앞에서 무더기로 무너지던 형편은 겨우 이십 세기에 이르러서야 호전되지 않았던가?)
할머니는 열을 낳아 둘을 건지셨다.
‘참척(慘慽)’을 본다고 그러는데, 기막혀라, 그럴 수도 있는 건가?
큰아버님도 자손은 보셨지만 일찍 돌아가셨다.
그 후 할머니는 두 손녀 사위의 횡사, 그리고 증손자의 죽음도 겪으셔야 했다.
증손자가 백혈병으로 죽어 실려나가던 아침에,
할머니는 눈감은 채로 머리 빗어 쪽 짓고 계셨다.
수전증으로 비녀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에 도와드렸다.
한다는 소리라니...
--할머니는 왜 안 가세요?
--에구 숭업게스리(흉하게)... 애 죽어 나가는 데는 늙은이가 가는 게 아냐.
--근데 할머니는 왜 안 울어?
--난 예전에 다 울었다. 눈물 마른지 오래야.
존 던은 거의 병적으로--누군 안 그런가, 뭐-- ‘죽음’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겉으로는~~~
그까짓 것 했더래요. 네까짓 놈 했더래요.
그는 죽기 몇 주일 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의 장례식 설교를 했다.
(‘Death's Duel’이라고 ‘십칠 세기 멋진 산문’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고는 수의를 입고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임종 얼마 전에 노래를 지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께 병중에서 드리는 찬송입니다.”
그거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나?
오는 줄 아니까, 왔을 때 맞이하면 되고.
오게 되었으면 피할 수 없지만,
그건 그때 일이고.
그게 “네까짓 게 뭔데...” 할 건 아니지.
세긴 세지.
그렇지만...
뛰어갈 것 없다고, 앞에 오는 비까지 미리 맞을 것 없다고.
(Death Valley, CA. 참 예쁘네, 이름하곤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