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아, 네 승리가 어디 있느냐? (8)

 

말짱 헛것?

 

봄이니까 꽃놀이하고 가을걷이가 있으니까 때려먹는 거지만,
뭐 자랑할 것까지야?
그 다음이 뻔한 걸.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라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허사가' 중에서)

 

    The boast of heraldry, the pomp of pow'r,
    And all that beauty, all that wealth e'er gave,
    Awaits alike th'inevitable hour.
    The paths of glory lead but to the grave.
          (Thomas Gray,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인간일생 경영이 바람잡이뿐...


 

그러니...

 

‘말짱 헛것’이라고?
잡고 싶었는데 놓쳤으니까
붙잡고 싶어도 손놓을 수밖에 없으니까
가진 줄 알았는데 없어졌으니까
누리고 싶지만 끝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지, 그게 왜 헛것이냐?
너무 귀하니까, 귀한 걸 지키지 못하니까 그러는 게지.

 

삶은 귀한 것, 아름다운 것, 숭고한 것, 거룩한 것.
지나간다고 해서 의미 없음이 아니잖아?

 

 

 

 

                                                           

 

 


넝쿨 타령

 

“호박 넝쿨 뻗을 적 같아서야 강계 위초산 뒤덮을 것 같지” 라는 속담이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던가, 세도 부려도 영구한 게 아니고 망할 날 있다는 얘기.
달도 차면 기울고, 돌절구도 밑 빠질 날 있는 거니까.

 

그게 하필 강계라?  여름이 짧은 곳이니까, 오뉴월 한 때의 ‘반짝 경기’에 난리 치던 초록이
한번 무서리에 시커멓게 죽어버리는 데라 그랬을까?

 

그와는 좀 다른 뜻이겠지만, 소월은 ‘넝쿨 타령’을 이렇게 읊었는데...

 

    박넝쿨이 에헤요 벋을 적만 같애서는
    온 세상을 어리얼시 뒤덮을 것 같더니만
    초가삼간 다 못 덮고 에헤야 에헤야
    둥글박! 댕글이 달리더라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그때 일군이 중국을 점령한 후에도 기운이 뻗쳐서 콰이강인지

그런 데까지 갔는데, 진주만을 폭격하고 어쩌고 요란 떨었는데, 그 기세 같아서야 천하를 뒤덮을 것

같았지만, “니네들 그래 봤자야...” 라는 염원도 섞였으리라. 

 

소월의 재주는 ‘초가삼간 다 못 덮는’ 제한성, 여력 없음에 한숨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둥글박! 댕글이 달리더라”로 반전(反轉)함에 있다.    

 

곧 죽어도 뭘 하나 남기더라는. 

 

 

   
  
누구나 다 “다 이루었다!”할 수 있겠는가?  말이 쉽지, 그건 성인(聖人) 급이라야...
그렇지만, 목숨을 받은 것은 어떤 미물이라도 나름대로의 이룸과 맺음이 있다.
하물며 하늘과 땅 사이에 버팀목 같던 사람에게 서랴.

 

성경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화(榮華)는 들의 꽃과 같음”을 반복해서 일러준다. 
불교라면 더욱 진한 표현들로 후렴을 부를 것이고.

 

아, 봄날 둘러보니 블로그마다 “꽃이 지네”라는 노래로 도배했더라.  그래, 꽃이 진다.
(그리고서들, 여름이 되니 여행 이야기, ‘피서지에서 생긴 일들’로 이어지던 걸.
그러니 꽃이 진다고 짐짓 슬픈 표정 짓는 사람 옆에서라고 덩달아 숙연해질 필요 없는 거야.)

 

꽃(花)은 풀(草)이 변하는(化) 거잖아?  피고 지고. 
거기서 끝나는가?  그래도 열림(結實)이 있잖아?  ‘씨알’로 남는. 
하여,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의 술어를 빌려오자면, ‘사건(event, actual occasion)’으로서의 꽃이

‘가치(value, eternal object)’로서의 씨알과 다른 게 아니라는 얘기다.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  그건 좀 그렇지만...
뭐 남기는 남지 않을까?  이왕이면 좋은 걸로.

 

그리고, 그 ‘수포(水泡)로 돌아갔다’는 말도 그러네.
흐름에서 튀어나온 방울들이 거품 되지만, 거품은 물 아닌가?  물로 돌아가던 걸. 
합류(合流). 
그렇게 안 되어도, 마른 땅 적셔주고 생명에게 기운으로 들어가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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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도 한 마디 하고 끝내신다면?  (아직 안 끝났는데...)

 

                                                                         바뀜(metamorphosis)은 사라지고 끊어짐(滅絶)이 아니라고.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활동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