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히리야
주: 이 글은 2000년 6.25 기념절에 제가 일하던 곳의 주보(週報)에 실렸던 것입니다.
그 후 몇 해가 지났고, 정세도 변했고, 그리고 제 생각도 더러 바뀌었지만,
그때 그 글을 나중에 수정함 없이 내놓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윗말에 사는 ‘형제’들이 마침 방문중인데,
착잡한 심경이지만, 뭐라 ‘새’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운동권’으로 분류됨이 엄청난 프리미엄이 되어 현 정부의 당상관이 된 이들 중에는
‘학습’이나 ‘의식화 교육’ 시간에 ‘김일성 장군 가’를 불러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관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옛날 동무들에게서 직접 그 노래를 배운 마지막 세대라고 할는지요.
밑 터진 바지를 면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그들이 내려왔고, 피난가지 못했던 그 ‘어린 동무’도
공회당에 불렀으니까요.
(이하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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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노래들
(... ...)몇 달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늘도 정답게 짝을 지어서
북으로 떠나는 전투기들아
침략을 노리는 오랑캐들에
로켓 포탄을 퍼부어라
우리는 이긴다 이겨야 한다
이기고 오너라 전투기들아
그리고 <6.25의 노래>라고 줄곧 불렀던 것이 있지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가사를 좀더 읊을까요?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던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싸워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효자라면--미주 동포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성묘는커녕 선친의 기일도 잊고 지나가는 판에
누가 이제 그 날을 기억하랴.
사변 둥이라도 쉰이 지났으니 그 비극 이후 반세기가 지나갔네요.
누가 그랬습니까? “비극은 없다”라고. 아직 비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38만 명의 아군 전사, 180만(?) 명의 공산군(인민군, 중공군) 전사, 민간인 사망 50만,
일천 백만의 전재민이라는 피해를 낸 전쟁을 두고
사변‘이나 ’동란‘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지만, 무슨 말을 채택했느냐 라는 시비를 떠난다면,
어쨌든 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잊혀야 한다고요?
어떤 것은 잊는 게 좋고 어떤 것은 잊었더라도 상기해야 하지만,
앞서 인용한 가사처럼 기억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날의 원수를 누구에게 갚으랴
그러면 쳐서 무찌를 “원수의 하나까지”에 누가 포함되겠습니까?
“어머니, 넉넉잡고 세 달 후면 돌아올 것입니다. 미군들이 더운 나라에서 와서 엄동을 견디기 어려워
잠시 물러나지만 금방 쳐들어 올 겁니다. 그 때까지 몸 성히 계십시오.” 라고 인사하는 아들의
등을 떠밀고 나서 옷고름으로 눈물 찍던 여인입니까?
전후에 태어나 반미 반팟쇼 교육받고 인민군 복무 마치고 노동적위대에 편입된 얼굴 모르는 조카이겠습니까?
그 조카에게서 난 것들, 한번도 넉넉하게 먹어 보지 못해 나이가 들었어도 체격이 왜소하지만
병역의 의무는 치러야 하니까 저보다 큰 소총을 메고 있는 손자들이겠습니까?
너희들 모두 내 피붙이가 아니더냐?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누구에게 대고 갚아?
육이오는 상기하되, 아서라, 이제 <6.25의 노래>는 금지되어야 한다.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지 말자.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자.
하물며, 원수가 아니라 형제라면?
“굶는 주제에 곧 죽어도 적화 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잠수함을 남파해서 침투, 무력 도발하는 것들,
에라 네깐 놈들 죽어도 싸다, 다 죽으면 통일되지 않겠니?”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사람이 없는 땅을 접수하는 것도 통일이라면, 진즉 ‘초토화’ 할 수는 없었을까?
막 자란 동생이 행패를 부린다고, 다른 동네 깡패를 불러다가 동생을 처치하라고 할 수는 없지요.
정치꾼들이 떠드는 ‘통일’이 아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떠한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올 수 없다”라는 구절을 삽입하였었지요.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오랫동안 ‘고려연방제’를 주창하였습니다.
현실 정치라는 소용돌이 가운데 지도자라도 그의 정치 철학과 신념을 소신껏 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집단 환각 증세로 돌아가는 ‘국민 정서’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소수의 극단주의자와 교묘한 언론 매체의 조종에 의해서 형성된 ‘국민 정서’가
곧 ‘표심(票心)’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결국 실종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대북 정책’이란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원’이라는 부서가 있기는 하지만 뭘 하는 건지?
통일하지 않겠다면서... 이북을 끌어안기엔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무력 통일을 하기엔 서로 역부족이라면서...
평화 공영, 자주통일, 민족중흥은 ‘너 죽어 나 살기’가 아니라
‘너 살아 나도 살기’의 철학이 체질화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일는지?
하여간, 불가능한 것이라도 바랍시다. ‘바람’이란 기적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목숨 바쳐서 통일”이라는 진부한 감정놀이가 아니라
화해와 공존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진실한 한 걸음’을 디딥시다.
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권이 남북 긴장 완화에 공헌한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때는 남측의 태도가 너무 저자세같이 보이고,
북측의 말도 안 되는 생떼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속상한 것도 사실입니다.
김대통령 자신의 인기와 정권 유지 차원에서 오도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의심하기로 말하자면 끝까지 파보지 않은 다음에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통일’이 꼭 ‘살 길’이라면 미덥지 못할 때에도 끝까지 믿고 바라고 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권력 정점에 있는 사람들과 통일을 추진하는 실무기관은 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민족 공동체에게 진행 과정을 보고하면서, ‘하나님이 보우하사...’의 뜻을 되새겨야 할 줄로 압니다.
갑자기 현기증 나는 속도로 교류니, 협조니, 화해니, 얘기들 해대니까,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또 한차례의 ‘집체 예술’ 쇼가 아닌가 싶은 시각도 있겠지만,
아무렴 언제까지 노려대며 으르렁거리겠나. 잘한 짓이야, 암 그렇고 말고.
“아아, 빨갱이가 어떤 것들인데, 요즈음 젊은것들은 공산당을 몰라서”해가면서,
이번 회담의 성과와 앞으로 이어질 이들의 희망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까딱하면 김정일이 노벨 평화상 타겠다”라는 냉소도 있겠지요.
여하튼, 만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속아넘어가지는 맙시다.
그러나 알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속아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결정적인 시기에 이르러, “우리의 사랑은 결국 옳았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술회하는 것,
그것이 ‘승리’입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흡수 통합’을 하겠다고요? 그럴 능력은 없을 걸요?
그저, 품어주는 겁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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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썼던 글이라서...
그 후는 다들 아는 얘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