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1)

 

잠비아에 가있는 딸에게서 오는 편지에는 늘 좌절의 한숨이 담겨있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이 덧없이 가버리도록 방치하는 ‘구조’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는...

 

Case 1

 

일요일이라 교회 갔다 와서 쉬고 있는 중에 긴급호출이 있어 병원으로 갔다.
어린 남매가 들어왔는데, 남자 동생은 이미 죽었다.
요리하지 않은 카사바 뿌리--타피오카 녹말을 만드는 식물--를 먹고 중독된 것.
감자 싹이나 협죽도(유도화) 가지에 독이 있듯이, 카사바 뿌리에도 맹독이 있다.
거기서는 다 아는 얘기다, 그것을 날것으로 씹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쯤.
왜 죽게 되느냐, 중독되면 어떻게 조치하느냐, 그런 것을 모른다.
물론 미국에서 간 신출내기 의사는 그런 경우를 접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뭘 뒤져서 알게 되었는지, 생 카사바를 섭취하면 체내에서 시안화물(cyanide)이
생성된다는 사실에 착안하였고, 산소 공급과 탈수 방지를 위하여 IV 투여했고,
소녀는 살아서 퇴원하게 되었다.
자식 하나라도 건진 어머니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갔다~가
다음날 돌아와서 대성통곡.  의사가 일찍 왔더라면 아들도 죽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통하지 않고, 붙잡고 설명해줘도 제대로 통역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우는 대로 방치.

 

Case 2

 

아침에 가니 두 아이가 죽어있다. 
간밤에 퇴근할 때 창백하기는 해도 죽을 지경은 아니었는데.
수혈 지시를 하고 갔는데, 시행되지 않은 것이다.
“왜 하지 않았냐?”고 그러면, 못들은 척 대꾸도 안하고.

 

Case 3

 

신생아의 숨이 멎을 때 인공호흡만 하면 소생시킬 수 있는데, 그 방법을 모른다,

숙련된(?) 의사나 신생아실 간호사들이. 
배속된 코찔찔이 의대생(고졸)들에게 호흡을 되돌리는 법을 강의하는데,
운 좋게 이런 의사에게 걸려서 ‘최신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고 눈을 반짝이고 있다고.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는가에 따라서 ‘잘 사냐 못 사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을 확률’이 결정되고 만다.

 

 

복골복

 

누구나 ‘복골복’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많이들 쓰는 말이니까.
그 뜻이 뭐냐?  알 듯 하면서도 막상 뭐라 하기도 그렇다.
표준말은 아니다, 여간해서 활자화는 안 되더라... 정도도 안다.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  복권 살 때 쓰는 말?  아니고.
모 아니면 도?  아니고.
잡히든지 말든지, 죽든지 살든지, 깡생깡사?  아니고.

 

아마도 ‘복불복(福不福)’을 어쩐 연유인지 ‘복걸복’, 혹은 ‘복골복’으로 발음하게 된 듯 싶다.
복불복은 같은 경우나 환경에서 운에 따라 복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운에 따라...

 

 

‘왜?’라는 질문에 대해 할 말 없으면...

 

왜 한 아이는 죽었는데, 다른 아이는 살아남게 되는지?

 

9.11., 뉴욕의 자유무역센터가 무너지고 수천 명이 희생되었을 때에,
어떤 이는 직장에 지각했기 때문에 살게 되었고,
다른 이는 일없이 출근 시간보다 일찍 나갔다가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도 다 제 운명이니까...

 

할 말 없으면 ‘운명’이라고 그런다.

 

운명의식이 처음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이다.

즉 불가항적인 일에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 처리 요구에 따라 도출되는 것이 운명의식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엠파스 백과사전)

 

주: 앞으로 편의상, 엠파스 사전의 풀이만 소개하기로 함. 
    (굳이 ‘학설’까지로 나아가지 않고, 비교, 비판하지 않는 뜻으로.)

 

곧잘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그러는데...
(에이 좀 있다가 화내자.)

 

 

운명과 섭리

 

일단 ‘낱말의 뜻’부터...
 
운명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 또는 그 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길흉화복. 타고난 운수나 수명 (국어사전)

 

인간의 의도나 일을 포함하는 우주 전체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기 어려운

궁극적 결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인지(人知)를 초월한 힘.

그것은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불가피한 필연의 힘이며, 누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힘이다. 또한 운명은 명확한 목적의지를 갖는 합리적인 힘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비합리적, 초논리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숙명론은 흔히 결정론과 혼동되어 사용된다. 그렇지만 결정론이란 모든 일은 각각의 원인에 따라 일정한 조건 아래서는 반드시 일정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설이다. 따라서 때로는 예견이 가능하며 예외적 현상의 발생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상 백과사전)  

 

섭리

 

기독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려 나가는 신의 의지 또는 은혜 (국어사전)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의지로 우주를 지배하며 인간의 구원에 관한 계획을 이루려는 뜻.

또는 그 목표로 이끎 (한자사전)

 

이쯤만 소개해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1) ‘섭리’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자에게만 의미 있는 말이다.

     (‘하늘의 안배(按配)’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답답할 때 써보는 말 정도.)

(2) (현대물리학의 발전에 따라 ‘통계적인 진리’의 개념이 소개되기 훨씬 이전에... 필요 없는 말이지만)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사람들은 필연, 우연, 몫, 분수, 맹목적인 세력의 자기 전개, 통계적 확실성에 대해서 감지하거나 말하고 있었다.


(3) 운명의 본체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으나 의지(意志, 뜻)라기보다는 항거할 수 없는 ‘힘’임에 반해서,

     섭리는 ‘인격체’의 의지나 뜻으로 간주한다. 

 

 

긴 얘기로 손님 쫓고 나서 이 말 해도 들을 사람이 남았겠는지...

 

Fato Providentia Major.

 

섭리는 운명보다 위대하다.
섭리는 운명을 넘어선다.
섭리는 운명을 제어한다.
섭리는 운명을 저지한다.  

 

 

하나님의 뜻?

 

섭리는 개인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채택한 고안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를 포함한 전 세계의 창조와 구원을 관통하는 일관된 사랑을 이르는 말이다.

 

‘왜?’에 대한 대답이 궁색하므로 “하나님의 뜻이니까...”라고 둘러대지 말라.

 

하나는 죽고 다른 하나는 살아남은 ‘이유’를 캐지 말고,
시인처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서정주, ‘푸르른 날’)


이라는 노래나 불러라.

 

당신이 모든 판결에 대해서 정말로 “아멘!”할 수 있고,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공동번역)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개역, 잠 1: 21)

 

라고 할 만 하거든, ‘하나님의 뜻’이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위로한다면서
“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울지 말라” 라고 그럴 것 없다는...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잖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슬픈 건 슬픈데, 울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