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머묾

 

앉은자리 꽃자리

 

구상 시인이 무게잡으면서 “너의 앉은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했던 말씀은
실은 옛적에 짱아(잠자리)를 잡을 때에 정신을 혼미케 하려고 꼬드기는 노래말이었다.
(잠자리가 알아듣겠는지, 들었다고 속을는지 그런 거 따져 뭐해?)

 

    잠자라 잠자라 앉으면 살고 날면 죽고
    천리 밖에 가면 네 목숨이 뚝
    멀리가면 죽는다 앉은자리 꽃자리

 

왜 잠자리는 한 군데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했을까?
그야 그랬다가는 나한테 잡혔을 테니까.

 

생 호밀 한 줌을 한참 씹으면 찐득찐득 해져서 껌처럼 된다.
그것을 뭉쳐서 싸리 가지 끝에 붙이면 잠자리를 잡는 낚싯대가 된다.
안절부절 날까말까 하는 잠자리에게 손이 닿도록 가까이 가지 않아도
그 싸리 끝을 잠자리 날개에 대면 파닥거리며 저항하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다.
그 밀껌의 접착성이라는 게 신통하지가 않아서
잠자리가 날기로 맘먹었으면 털고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쳤던 것일까?   

 

 

                  

 

 

사람도 어느 때가 되면 정박(碇泊)하고 싶을 것이다.
(그게 영화 ‘Phaedra’의 우리말 제목 같은 바람이어서가 아니라 쉬고 싶다는 뜻.)
날개 좀 접으려고 그러는데, “주차 금지!”라는 고함이 들린다.

 

저기 저 꽃자리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로 접어드니까,
그때 되면 아무 데나 눕지 뭐.
그동안은 “훠어이~”할 때마다
“내가 언제 앉는다고 그랬나?” 하고서 날아가면 그만이니까.

 

                                                                              

                                          

          

 


우리의 사랑도 흘러

 

그때 학생들은 다는 아니더라도 몇 줄은 외웠다.
보통 이렇게 나가는데(흔한 역본)...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나는 기억하리라
    기쁨은 언제나 아픔 뒤에 왔다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es la peine

 

그게 굳이 따지자면 첫 련부터 막히게 된다.
‘Et nos amours’를 어느 쪽으로 연결시키는가에 따라서 이렇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십 년 전에 딱 한 달 불어를 공부한 실력으로 조금 비틀어보는 거니까 뭐...)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른다

    아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의 사랑을
    그 사랑이 떠올리게 하네
    슬픔 뒤에는 꼭 기쁨이 따라오던 것을

 

 

 

 

(더 이상해졌지만, 할 수 없다, 좌충우돌.  내친 김에...)
한참 내려가서...

 

    강물이 흘러가듯 사랑도 가버린다
    사랑은 가버린다
    얼마나 인생은 느리고
    또 얼마나 희망은 강렬한가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erance est violente

 

그게 “얼마나...”의 영탄조로 나아가야 하는 건지?
뜻은 이런 것일 텐데...
“삶의 아픔은 치료가 더딘데(indolent)
사랑의 기대는 마구 용솟음치고 자라난다”는.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지 뭐.)

 

마지막.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물고

 

그런가?
가는 세월 동안 어떻게 내가 남을 수 있겠는가?
‘나’는 세월을 타는 거니까, 나는 세월 따라 떠나고 흐르고 바뀐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면 호들갑을 떤다.
“어쩜 너는 옛날 그대로냐?”
그게 그렇지 않다니까.

물론 다 변하는 것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신원(identity)이란 변하긴 변했지만 조금만 변한 것들로 늘 ‘재(再)’구성한 것이다.

 

 

                                                  

             (피카소가 그린 아폴리네르)          "멀리도 떨어졌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


 
그들은 크고 작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연애박사들이었다.
고수들끼리 만나도 헤어져야 하는구나.
‘한때 짝꿍’의 가치를 몰라줘서는 아닐 것이다.
“그림만이 끝까지 열광시키고 괴롭히는 (영원한) 가치”라고 했던 그녀는
편지 한 장쯤은 간직하고 있었을까?

 

 

                                                   (Marie Laurencin, '시인과 그의 친구들')

 

 

 

[간주] 한사람에게만 갈채 받아도

 

어떤 피아니스트가 외국의 명문 음악원에서 (연주)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동안 유명 경연에서 여러 차례 수상경력을 쌓은 후에 귀국, 교향악단과 협연하게 되었다.
연주가 끝나고 그의 성장과 성공을 확인하고 열광하는 청중들의 박수갈채에 묻혔다.
지휘자도 박수하고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데, 막상 그는 딴전부리고 있었다.
멍하니, 아니 초조한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였다.
거기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 웃음 지으며 “브라보~”라고 외쳤다.
그러자 연주자는 비로소 얼굴을 풀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절을 했다.
대관절 누구기에?
그 피아니스트가 어렸을 적에 천재성을 발견하고 제자로 받아들였던 선생님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그는 선생님의 인정을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절로 절로

 

물이라고 언제나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억센 떠밀림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렸지만,
때로는 쉬고 싶기도 할거라.
담(潭), 지(池), 연(淵), 소(沼), 택(澤) 같은 데에서 잠시 죽은 시늉이라도 하며.


언제까지 머물 것도 아니고,
있는 동안이라고 편안치도 않아서
소용돌이가 있고 그렇지만,
천천히 가고 싶을 때 숨돌릴 짬은 얻은 셈이니까.

 

 

 

 

 

축제란
흘러감을 일시 막아 고이게 하고,
그 넉넉함을 즐기는 것이겠다.
언제까지 막을 수도 없고,
누림(享樂)도 물리니까,
때 되면 길 터
다시 흐르게 할 것이다.

 

Jeannie(眞伊)는 얼마나 똑똑한가.
“영원히...”라고 그러지 않았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 오기 어려오니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간들 엇더리

 

어쩌겠는가...

 

    산 절로 절로 수 절로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절로

 

 

 

 

 


흐른다기에...
흐름 위에 어린다기에...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밝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은 어린다.
          (윤동주,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