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인가 (1)

 

제 철 아니라 뽐내지 못하는 정원에서 

 

 

 


여름은 노역이었다.
가을에 돌아보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워낙 기운이 떨어져 도움에 의존하게 되면,
비로소 생명의 절정, 빛나는 때, 아름다운 순간.
아기, 어린 시절에는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었고,
여러 해 스스로 서며 살았는데,
병약자, 노약자가 되면서
귀의하게 되는구나.

 

 

                  

 

 

                              지주목이 있어야 선다는 건 부끄러운 사실이 아니다.
                              남보다 크니까 바람을 많이 맞는다.
                              연리지(連理枝)라고 뽐내지 않으면서 서로 지켜보기도하고.

 

 

       

 

 

 

‘착함’이란 우물가의 험담과 선술집의 토론을 견디는 것일까?
끼여들지 않았다고 ‘괴상한 사람’ 취급받은 날들이 길었다.

 

우리는 왜 은수자(隱修者)로부터 삶을 배워야 하는가?
사는 거야 일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알 듯 한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냥 살아있다는 게 지극 정성(至極 精誠)이다.
꽃 피우고 향기를 품었다고 달리 바라는 것도 없지만.

 

 

 

 

우물 속, 골짜기.
내려가 보지 않았기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안개는 걷히지 않고
확인하지 않았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몸에 푸른 옷이 입혀졌다가
저물자 다시 벗는다
겉옷, 속옷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