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데
비는 오는 거야
항상 지당한 말씀만 하시는 롱펠로우 할아버지께서 그러셨지.
어떤 인생에게도 어느 정도의 비는 내려야 해
어떤 날들은 어둡고 음산할 수밖에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Some days must be dark and dreary.
(Henry Wadsworth Longfellow, ‘The Rainy Day’)
그러면, 그냥 “Amen!” 모드로 돌입하던가?
“알아, 그렇지만 내겐 너무 내린단 말야.”로 튼다.
그래봤자니까, “볕들 날 있겠죠.”로 얼른 돌려라.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But too much is falling in mine
Into each heart some tears must fall
But some day the sun will shine
그렇게 Ella Fitzgerald, Nat King Cole, Cliff Richard가 불렀다.
잘했어, 운다고 비가 안 오나?
기억나 그 노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But that doesn't mean my eyes will soon be turning red
Crying 's not for me
Cause I'm never gonna stop the rain by complaining
Because I'm free
Nothing's worrying me
그거 그 영화 말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를 뭐라 했더라?
‘내일을 향해 쏘라.’ (아휴~)
그게 멋지게 들려 광고쟁이, 아냐 카피라이터들이 자주 사용하는 모양인데, 그거 안될 말.
내일을 향해 쏘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가 되잖아?
(못 말려, 왜 이름들을 그렇게 옮기지?)
암튼, 비는 오는 거야.
기리티? 길티 않고...
비 오면 안 돼
그래도 그렇지, 아무 때나 오면 되나...
기다렸던 축제의 밤에 비가 오고 무기연기 한다는 소식?
그럼 안 돼지.
아이들이 그랬다.
아비가 어느 날 놀러가자는 중대성명을 발표해도 도무지 믿지를 않았다.
그 ‘머피의 법칙’인가가 정형화되기 오래 전에 걔들은 advanced version을 개발했더랬지.
If anything simply cannot go wrong, it will anyway!
(그다지 싹수없는 일이 아닌데도 결과는 글렀다는 쪽으로 가더라는 얘기.)
또 그렇다.
겨우 공사장 막노동 자리 하나 얻었는데
다음날부터 줄곧 쏟아지는 거라.
철 아닌 장마가.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언제까지 내리려나...
집이 있으면 좋다고?
누가 그랬어,
“집이 있으면 폭풍우는 좋다”고?
노상에서 큰바람이나 폭설을 만나서야 되겠는가?
하안거(夏安居)나 동안거(冬安居)가 궂은 날엔 싸다닐 수 없어서 시작됐을 것이고.
그렇더라,
비바람 몰아치는 날 안에서 내다보다가
보행자의 우산이 뒤집힌 걸 보면서 웃잖아?
가을걷이가 넉넉하고 광에 장작이 차곡차곡 쌓였으면
눈 오는 소리--누가 그랬지,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가 괜찮더라고.
그래도 그렇지, 지붕이 무너질 정도로 쌓이면 안 되잖아?
바로 아랫집하고도 오가지 못할 정도면 먹을 것 떨어지지 않아도 섧던데.
그리고, 집도 떠나야 할 때가 있거든.
태풍 카트리나가 닥쳐오자 뉴올리언스(New Orleans, LA)에서는 주민들에게 떠나라고 했다.
제 집 있어도 갈 데 있는 사람은 도시를 나가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만 명 정도--은 대형 경기장에 수용케 했다.
피해가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작년 연말 인도양에 닥쳤던 해일 같은 재난을 두고,
깔끔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나 펴는 듯이 “다 하나님 하시는 일이니까...” 그러지 말자고.
재난은 없는 게 좋지.
비 오는 날은 싫어
앞에 먹구름이 놓여있고
어느 때가 될는지 가다가 소나기를 만날 게 확실하더라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잠깐 지나가는 비이기를 바라며.
도시에서 만나는 비야 뭐 험하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젖으니까 궂은 날이라고 그러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일 끝나 돌아갈 때에
비 오는 날은 더 싫다.
우산이 없어 젖어서 뿐만이 아니고...
그래도 둘이라면 좋아라
산책하듯, 혹은 배낭 여행길에 만나 같이 걷는 사이라면
헤어질 게 분명하지만 섭섭할 것도 없다.
짐은 졌지만, 가벼울 것이고.
지금은 좋지만...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라고 그러긴 했지만,
같이 걷는 길이 줄곧 기쁘지는 않을 것이고,
짐 지지 않았는데 피곤할 수도 있고.
그래도 무슨 서약 같은 것으로 매이는 게 좋던 걸.
둘이라면 좋아라.
비 와도 좋아라.
비 와서 좋아라.
비 온 김에...
같이 걸을 때 말이지,
여자가 우산을 받쳐드는 건 아니지.
나 잘난 거라곤 너보다 한 뼘쯤 키 큰 것뿐인데,
네가 우산을 들고 가면
나는 목이 걸려 끌려가는 꼴인데,
어떻게 ‘나무들 비탈에 서다’ 자세로 노상 갈 수 있겠니?
네 우산 있다고 따로 펼 것 아니고,
너는 내 허리를 안고 가면 되는 거야.
하늘을 받치고 너를 보호하는 게
내 하는 일이고.
F-word보다 나쁜 건 S-word라더라 마는,
나의 Job description(직무 내역)은 Sacrifice,
네 것은 Submission.
(성경에서 그렇다니까...)
비가 오더라도
둘이서는 좋다고 그랬지만,
혼자라면 또 어떻겠는가?
피할 수 없는 것, 고르지 못하는 것, 다가온 것을 받아들이자.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이다.
그런 줄 알고...
노래할 사람은 빗속에서도 노래한다.
I'm singing in the rain
Just singing in the rain
What a glorious feeling
I'm happy again
I'm laughing at clouds
So dark up above
The sun's in my heart
And I'm ready for love
춤출 사람은 비 오는데도 춤춘다.
살아있는 것은 꼴(形)이 있고 움직임(動)이 있는데,
비 오는 날이라고 맵시(態) 차리지 않고 죽은 듯이 있을 순 없지.
아무래도 볕 나는 날보다 흔하진 않으니까 별난 날로 알고
비 오는 날에는 좀 별나고 야단스러운 몸짓이 어울릴 것이다.
비도 흐름, 춤도 흐름이니까
쌍곡선으로 마주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힘으로 마주쳤다가 겨우면 쉬고
다시 피어오르고 사그라지면서...
둘이 있으면 둘이 추고
혼자라면 혼자 추고.
하하, 혼자라고 홀로는 아니고,
하늘 있고, 땅 있고,
비 있고, 바람 있고.
춤꾼이 따로 없고,
네가 비 같으면
바람 같으면
흐름에 따르면,
살랑이는 바람처럼
막힘 없는 흐름처럼
신명 들린 춤사위가 늘어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