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더러 남으라고 말해줄 사람?

 

PC방에 한 시간 앉아있으면 이메일 세 통은 보낼 수 있겠구나 하고 들어왔다가

“가만 있자, 누구한테 보내려는 것이었지?”가 분명치 않게 되었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이 보도록 하자

찾아온 사람이니까 불특정다수는 아니고

아는 이, 관심(Inter-esse)있는 이일 테니까...”

라는 속셈으로 몇 자 남긴다.



내가 알던 샛길 다 막으셔서

잠입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부끄러운 낯짝이지만

한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도 오래 떠나있다 와서

아는 사람이 없는가 했어

여기 사는 사람들도 서로 모르고 지낸다고 그러네

날더러 반갑다고 그러네

말 트고 지내자고 그러네

옆집 아저씨와 인사 나누지 않으면서

왜 내게 다가오는지 잘 모르지만

아직은 정주는 게 두렵지 않아

좋은 낯으로 끌어안는다.


오늘이 추분이라고 그런다.

밤이 길어지고 추위가 다가오고 겨울나기 걱정하는 때.


내 나이쯤 되면

입지가 줄어들고 영향력이 약화됨을 비관하더라.

끝이 가까워질수록 공간이 좁아지는 것은

내가 떠난 뒤에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게 하려함이니.


나 없는 듯 사라지더라도

파문 한번 일으키기는 해야 되니까

누가 날 들어 던져줘.

그렇게 사람들 다니는 길가로 굴러왔다

32년만이구나.


그때는 ‘내일’이 무진장이었다.

퍼마신다고 술도가에 술이 떨어지겠니

돌 떨어지면 보도블록 빼어 투석할 수 있었지

그때는 낭비가 죄도 아니고

두려움도 아니었다.


실은 그때도 ‘내일’은 없었다.

언제는...

내일인 줄 알고 찾아가면

또 다른 ‘오늘’이 무표정으로 맞았다가

의미를 남기지 않고 가버렸지.


이제 나 한번만 더 속기로 했다.

내일이 있긴 있을 것 같다고.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대치되었어도

쓸쓸함은 마찬가지이고

괴로움은 더해졌지만

이런 건 좋더라...

더 잘 보이고 싶거든

더 잘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더 노력하기로 했지.


여름에 이룸이 없었다는

뉘우침을 가릴 수 없는데

사과광주리 이고 들길로 오는 여인처럼

가을은 열매를 이고

내게로 찾아온다.

“네 몫이야”라고 인사하며.


만나면

몸과 마음을 비비게 될 텐데

켜켜로 쌓인 껍질 떨어내면서 절망하지 않고

금방 드러난 속살로

사람 믿은 걸 보상받기를 바란다.


“그냥 이대로 좋아요” 하는 이들

곁에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