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5
우련 붉어라, 그런 말은 알지.
{이맘때 남녘 절집 요사채에서 반투명 창호지 통해 내다보면 그렇지?
그래도 정끝별의 ‘춘장대 동백숲’ 같은 걸 떠올리면, 에비~ 안 돼!}
어룰 없이? 그게 뭔 소리여?
사전과 학습서에서는 ‘어룰’이 ‘얼굴’의 평안도 방언이라고 하던데
서북청년단 활동하던 정주 출신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모르갔시여” 그러시던 걸.
어룰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 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김소월, ‘봄비’-
그러니까 ‘어룰 없이’는 ‘덧없이’ 쯤으로, 혹 ‘부질없이’로도
무리해서 ‘하염없이’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냥 “소월 ‘어’자, 정식 ‘룰’자, 뜻 미상, 독자가 입맛대로 새길 것”으로 해둘까?
뭘 모르면서도 곧잘 인용들 하더라.
아, 에어컨 켤 정도로 덥더니만 오늘은 손이 곱아서 글씨가 만들어지지 않다.
비는 내리고.
지짐지짐.
이런 날 지짐이나 부쳐 먹으면 딱이겠다.
서울에도 목련 막 터지려고 한다는 소식.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그런 것 말고...
기쁨은 슬픔이다, 그거 말 되지?
좋은 채로 멈췄던 것은 나중에도 좋다, 그것도 말 되지?
그때는 내가 강론하는 입장이어서 그랬다.
“행복추구는 生得權(birthright) 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해서 포기하면 죄악입니다.”
에이, 행복추구권 같은 것 행사하지 않아도 돼.
행복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면
{뱀발: ‘행복하지 않아도’가 ‘불행해도’와 같은 뜻은 아니지.}
그만하면 행복한 거다.
괜찮으면 됐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으면 그건 정말 행복한 거다.
*노래는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사, 심진섭 곡, 테너 이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