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비가 이리도...

 

당신이 없는 세상에

살아 뭣하랴

그랬던 이들 비웃지 말아요.

기대고 살다가

버팀목이 치워졌는데

쓰러지지 말고

기울은 채 버티라니요.

 

 

             

 


헤어져야 할 이유가

다 차지 않았는데

한번 토라짐으로

억지 부리는 이들은

다시 생각해보세요.

그러는 게 아녀요.

돌아서고 몇 걸음 떼고 나면

되돌리기 어려워요.

외면하고픈 때가 있겠지만

떨어지지는 마세요.


저물면 오므리는 꽃잎들은

슬퍼하지 않아요.

다음날 햇볕 받으면

다시 웃을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가을비가 사나흘 계속되면

“글렀다”라는 한숨 나오게도 됐네요.

그럼 틀린 거라고.

겨우 예닐곱 날

부끄럼 없이

온몸 드러내고

하늘을 받아들이고

햇볕을 빨아들이고

벌 나비의 간지럼을 참아

씨 맺고 싶었던 거잖아요?

 

 

              

 


제 철도 아닌 때에

얼른 꽃 피워내지 못했다고

한여름에는 잡초 취급당했지요.

이슬 차질 때쯤 되어

화려함이 사라진 꽃밭에

빛깔이 아직 조금 남았음을

꽃밭 임자께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혼자 남았으니

주인의 아낌을 독차지하겠다는 것도 아니었어요.


쳐다보지 못할 님이라고

나를 속이지 않았어요.

발꿈치 들고 목을 빼며 그리워함을

숨기지 않았어요.

잘 보이고 싶어 가꾸던 노력을

굳이 감추지 않았어요.

(주제 파악하라고 옆에서 키들거렸지요.)

단장한 모습 겨우 하루 보여드리고

비 때문에 추레해진 꼴로 매달려 있으려니

서글픔을 참을 수가 없어요.

 

 

                                                                                 

 

 

(비 오는 날 가을 벌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