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런 사랑 아니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진리라면 으레 공식처럼 정리되고
격언으로 포장되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꽃일수록 향기는 미미하다" 식으로.
그렇더라.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름다우면서도 고운 인격의 향기를 풍기던 걸.
그걸 두고 또 그럴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예전에 험한 놈에게 걸린 적이 있었는데 겁준다고 하는 말이 그러더라.
"죽을 때 되면 눈에 뵈는 게 없지?"
그 말이 생각나서 삐죽삐죽 웃으며 중얼거린다.
"나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대말고는."
이제 그럴 것 없다.
꼭 "그렇다" 할 것 아니고
우길 게 아니고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라고 지나가자.
편하게 살자.
사람도 그렇다.
사랑은 필요하지만
"꼭 그 사람이어야" 그러지 말자.
사람 먼저 있어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랑할 사람을 찾자.
최상의 상태, 절정기
조금 이르면 장래가 촉망되는 때
조금 비껴 섰어도 워낙 많이 벌어놓아서 까먹을 게 있을 때
그런 때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살짝 벌어진 석류 같은 입술 사이로
레몬 꽃인지 수밀도 냄새랄까 그런 게 풍겨나는 때
눈 가리고 곁에 가도
멋진 사람임이 분명해서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는
그런 때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늙은이 쉰내를 염치없이 풍기면서
"나도 왕년에는..."을 부르짖을 나이 되어서도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주책이나 망령 탓으로 돌리며 넘어갈까?
모든 도박에는 승산이 있다지만
사랑을 얻을 자신이 있다고 날뛰는
저 유치하고 원색적인 도발을
너그럽게 봐줄 눈길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자.
뻔뻔하다 해도 사랑하자.
죽을 때까지 사랑하자.
삼엄한 아름다움 같은 건 이제 없다.
슬슬 피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는 구름도 괜찮더라.
솔숲의 바람소리도 같이 놀 만 하더라.
겨우 이름 얻은 그저 그런 들꽃들도 봐줄 만 하더라.
"네게 나는 무엇이냐?"를 되풀이해서 묻지 말고
남의 마음 한 자락을 베어오지 못해서 안달할 것 없고
그냥 눈인사와 빙그레웃음으로 '평안(shalom)'을 기원하자.
방학 숙제 한꺼번에 하듯이 일기장을 메울 것이 아니고
잔 볕이 따스한 언덕에 누워
꽃밭 같고 꿈결 같이 황홀한 기억들을 되새김질하고
어둠이 내리면 촛불 켜고 한참 기도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잠이 아니라면
하루 더 얻게 될 터이니
두려워말고 눈을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