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지 않았는데
몇 주 비웠더니 정원이 엉망이다. 그렇겠지 뭐.
여름 지나 떠난 걸음이니
터앝 돌보기는 season-off로 알고 손 털었던 셈이었고.
자, 돌아왔는데..
우거진 잡초 밑에서 수박을 여덟 개 땄다.
세 개는 놋요강 만하고, 네 개는 둘이 퍼먹기에 알맞은 크기.
한 개가 남나? 흠, 그건 말이지, 지름이 떡시루 정도. 정말 크다. 이런 괴물도 있구나.
(그렇다면 그런 줄 알지, '물 반 고기 반'이라고 그랬다고 저수지 물을 전부 빼면서
달아보자고 할 사람 없겠지요. 지난 주일에 공동체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어요,
증거 보전 신청을 내지 않아 사진 촬영 못한 채로 그만.)
돌보지 않았는데, 자랐고, 열렸고, 맛들었구나.
미안하고, 고맙고...
코끝이 시큰하다.
(처음의 감격이 잦아지면서 비교하는 건 안됐다만,
한 동네, 아니 한 덩굴에서 자라도 저렇게 다 다른 거구나.
그야 뭐 난놈, 못 난놈, 잘 자라준 놈, 속썩이는 놈, 그저 그런 놈, 다 따로 이지만.)
참 좋다.
가을하늘은 한국에서 독점한 줄 알지만,
"구름 한 점 없는"이라지만
(그래도 구름이 있어야 하늘같지만)
그럼 저 하늘은 뭐야?
눈이 시려 오래 바라보지 못할 저 옥색 치마는 어때서?
정작 "난 그만 울어버렸네"가 된 것은 수수꽃다리 망울이 부풀었기에.
배경을 좀 읊은 후에...
이십 년을 북국(캐나다)에서 살 때에는 봄을 맞는다는 게 정말 살아남은 감격으로 다가왔었다.
'해방가' 노랫말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처럼
그 길고 어둡고 추웠던 겨울이 드디어 가버렸음을 확인하면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언 땅이 녹기 전에 싹이 칼처럼 뚫고 나온 게 언제라고
물풍선 터트리듯 빛깔을 쏟아내는 수선, 튤립,
된바람 이긴 가지에 다닥다닥 열린 망울이 따로따로 터지는 라일락,
그것은 '봄의 신앙(Fruehlingsglauben)'이 보상을 받게되는 환희이었다.
추위가 싫었는가 남쪽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음... 여긴 '봄의 제전'이 없는 곳이구나,
겨울 추위(chilling period)를 견디어야 꽃눈이 형성되는 봄꽃들을 볼 수 없었다.
유난히 라일락이 아쉽고 그리웠다.
(라일락은 'botanical zone 6' 남쪽에선 꽃 보기가 어렵다. 이곳은 "8"이다.)
그러다가 지난봄 종묘상(種苗商)을 지나가다가 마른 가지에 피다만 꽃 몇 개가 붙어있는
수수꽃다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건 소학교 시절 짝꿍 계집애를 만나는 기쁨이었다.
(반갑기는 한데, 늙어빠진... 망가지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그래, 그때 그 나무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건졌다.
'Miss Kim Lilac(syringa vulgaris)'와 'Dwarf Korean Lilac(syringa meyeri pablin)'을
3불씩 내고 구해왔다.
구했다고? 물 주어도 죽더라.
"너흰 그때 이미 죽어있었던 게야. 죽은 거야 어찌 살리겠냐?"
그래도 뽑지는 않았다.
(인정이라기보다는 가버린 것 잊지 못하고 죽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게으름 탓이지 뭐.)
그런데...
넉 주만에 돌아와 미안한 마음으로 황폐한 뜰을 돌아보는데,
거기 꽂혀 있지만 죽은 것, 아주 잊혀지지 않았더라도 관심에서는 벗어난 것,
그 마른 가지에 오들도들 좁쌀 만한 것들이 돋아있더라.
돋보기 끼는 눈에 어쩜 그리 잘 보이냐, 그 보랏빛 알갱이들이.
(몇 일 지나 이제는 쌀알 만해졌다.)
그게 피었다고 해서 화려한 매스게임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다.
봉오리들의 대부분은 시들시들하다가 떨어져 어린 감 도사리처럼 될 것이다.
(나중에 실망하지 않으려고 비관적 전망을 먼저 공포한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그만해도 얼마나 고마우냐.
그러니까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지 못해서
겨울잠(dormant period) 자듯 죽은 척하고 있었구나.
말라죽었다고 단정하고 구박한 것도 모르는 척 했구나.
선선한 바람 부니까 "이젠 깨도 돼요?" 하는구나.
그렇더라.
사랑을 넉넉히 부어주어도 깨죽거리는 것도 있고,
한번 건드렸다고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도 있더라.
네게 베푼 건 없고 돌봄도 시원찮았는데.
('수수꽃다리'나 'Miss Kim'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 대해서는 돌아다니는 얘기가 많으니까
가뜩이나 긴 글에 덧붙일 것은 없겠다.)*****
아래 글은 지난해 덩굴 걷던 날에 쓴 것이다.
("금잔화": 섬기던 교회의 홈페이지에 실렸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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