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는 산이 많다. 
가친께서 몇 해 은거하신 강화도에도 산이 많다. 
그때 옆집 사는 어느 젊은 목사님에게 그랬다. 
"어쩌면 이 작은 땅에 산이 그리 많은지, 그 산들이 하나같이 우뚝 솟았네요."
그러자 그가 우쭐하는 태도로 말을 받았다.
"나도 텍사스에 가봤지만, 이 강화도의 산들을 쭈욱 펴면 지표면이 텍사스보다 넓다 이겁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남북한 합한 면적의 세 배가 넘는다고 대꾸할 것도 없다.
그래, 여긴 산이 없어.  내 산이 그리워서라도 다시 돌아갈 거야.

 

 

 


아니, 뭐 미국이라고, 또 텍사스라고 산이 없겠는가. 
그런데, 미국(특히 서부)에 있는 산들은 웅장한 만큼 훈련과 장비를 갖추지 못한 보통 사람은 올라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기는 해도 가지는 못하는, 근처까지는 가도 깊은 곳으로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는 산이다.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같은 것들이 아니라도 좋다.  그냥 산길을 걸을 만한, 깔딱고개를 오르면 완만한 능선이

펼쳐지는 그저 그만한 산들--그런 점에서라면 서울은 얼마나 좋은가--이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

 

 

산에는 고개가 있다.  큰산을 넘자면 여러 고개를 지나야 하던 걸.  '산 넘어 산'이라는데, 그 산 다 넘는 게

아니더라도 고개는 넘어야 한다.

 

딴 얘긴데, 몇 고개를 넘어야 인생이 풀릴는지...
넘기는 넘어야 하니까.

 

    그가 넘어야 할 고개
    그건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지요
    한 고개 넘어 또 한 고개
    웬 고개가 그렇게도 많은지요
    우이령 넘고 우듬재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박달재 넘고 추풍령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웬 고개가 그렇게도 높은지요
    새재 넘고 고모령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다섯 고개 여섯 고개 넘었는데
    또 한 고개 남았다고 했지요

 

        (천양희의 '스무 고개'중).

 

 

        

 

 

 

가야할 길이라면 넘어가야 할 고개가 많은 줄 알고 떠나는 것이다. 
고개에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
믿는 이들은 그런다.  "주님께 의탁하자"고.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이라는 노래도 있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해서 산이 평지가 되고 고갯길이 신작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고통과 역경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척척 잘 풀리다가 사망과 멸망의 광장에 도달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숨겨진 좁은 길을 가면서 위로를 발견하기도 어려웠는데
영광의 나라로 다다르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런즉, 현실적으로 어렵고 힘들고 맥빠지는 길에서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이' 길을 걸읍시다...

(~라는 설교가 있었습니다.)

 

 

 

 

 

지리산만 백 번 이상 올랐다는 이성부, 그만 하면 도산데,
산에는 길이 없나,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그러면 어떡해?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들 열어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그런데 말이지, 길은 만드는 걸까, 발견하는 걸까?
있어서 길이 아니라 만들었기에 길나는 것 아닌가?
결국 '저마다 제 길' 아닌가?

 

 

                                                                           [그리고 네 마음 깊은 곳을 찾아가자면 말이지,
                                                                           길 내면서 가야 할텐데, 그거 해치고 다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는 게 낫겠어.
                                                                           모르면서도 좋아한다고 그러고.]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차 마시러 가던 길

                                                                                                                               너누 넓혀놔서... 

 

 

 

요즘 내 형편이 그러네.
가자면 못 갈 것도 없는데, 막상 가자니 뚜렷이 갈 데가 없구먼.
그야 뭐 이 나이에 다 그렇겠지?
나만 한심한 처지 아닌 거지?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김소월, '길')

 

 

       

 

 

 

에고, 밀려가든지, 끌려가든지, 끌고 가든지,
가긴 가는 건데,
뭐 이리 돌아볼 게 많으냐,
안 가겠다는 것은 아닌데
붙잡는 게 많으냐.
붙잡기는 누가?
그냥 제 마음이 미적거리는 것이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