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병분(芝蘭竝芬)

 

    너울가지 없어 사람들 곁에 두지 못하다가
    방짜를 하나 찾긴 했는데
    그 염려(艶麗)를 좋다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가을
    최랑의 누락에 셋째 폭의 글처럼('이생규장전')
    소슬한 가을바람 찬이슬 맺게 하고
    새 옷을 마르려니 가위조차 서늘해서
    다리미 가져 오라 했더니 그도 꺼졌더라는
    그런 날에
    지란지교를 생각해보네 만

 

 

       


 

    다산과 혜장 초의와 추사
    다 제 자리가 따로 있으니까
    좋다고 더불어 살 수 없고
    더딘 걸음에 벗의 죽음을 지키지 못했지만
    차 나누며 즐긴 시간이
    차 한번 끓일 만큼 짧지는 않았지

 

 

        

 


    그 정도 고결해야
    어울릴 수 있는 건가
    너 나라도 허물 있는 채로
    나무라지 말고 지내자고


    가까이 있던 시간
    그들만 못 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헤어졌지만
    그만 하면 됐지 싶으면
    좋은 기억만 추리고
    늘 같은 마음으로
    장무상망(長毋相忘)

 

 

                                         

 


 

    흐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 물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거기 그대로 있는 산에
    물도 늘 감싸며 돌거니
    떨어진 것도 아니고
    다했다 할 것 아니네

 

   

      


 

    누가 먼저 폈더라도
    더 곱더라도
    향이 더 진하더라도
    칭찬이 한쪽으로 쏠리더라도
    그로 인해서 더 기뻐하자


    얽혀지지 않았어도
    가까이 두고 보면 되고
    얼싸안고 보듬지 못하나
    향내를 주고받음으로 기뻐하고
    상사(相思)를 불쌍히 여겨
    바람이 조화를 부리는가
    슬쩍 닿기라도 하면
    놀란 가슴으로라도
    뿌리치지 말자

 

 

 


 

 

                                                   남은 먹으로 장난삼아(戱以餘墨)?
                                                   아닌데 그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