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언제 보낸 편지를 이제 받아보게 되었는가?
그렇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전자우편, 문자 메시지, 채팅... 그런 건 없어야 한다고.
실시간 배달? 생선회도 아니고...
전달되는 동안 느낌만 아니라 형편도 바뀌지만,
기다림의 자기최면도 좀 보태야 되는 것 아닌가?
그 통영우체국을 이용하던 유통물자처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뭘 어쩌란 말이냐, 내 참...)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했다.
겨울 끝나기 전에 보낸 게
다른 겨울 맞을 무렵에야 오다니
시베리아가 멀긴 멀구나.
소냐에게
가도 가도 2월은
2월이다.
제철인가 하여
풀꽃 하나 봉오리를 맺다가
움찔한다.
한 번 꿈틀하다가도
제물에 까무러치는
옴스크는 그런 도시다.
지난해 가을에는 낙엽 한 잎
내 발등에 떨어져
내 발을 절게 했다.
누가 제 몸을 가볍다 하는가,
내 친구 셰스토프가 말하더라.
천사는 온몸이 눈인데
온몸으로 나를 보는
네가 바로 천사라고,
오늘 낮에는 멧송장개구리 한 마리가
눈을 떴다.
무릎 꿇고
시방도 어디서 온몸으로 나를 보는
내 눈인 너,
달이 진다.
그럼,
1871년 2월
아직도 간간히 눈보라치는 옴스크에서
라스코리니코프.
[~라고 김춘수 대필]*
* 그것을 다시 베낀 이 주.
가볍든지 무겁든지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니까
가볍다고 공중에 머무를 수는 없지.
애쓰고 날개 저어도 결국 떨어지지.
(흠,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며?)
그렇게 떨어졌다고 자닝한 것도 아니고
그 바스락거리다가 바스러질 것이 꼴에 잔인해서
베기도 하고 짓찧기도 하더라니까.
억새에 뭐 벤다고 그러지.
지난해 가을에는 낙엽 한 잎
내 발등에 떨어져
내 발을 절게 했다.
그래 너는 가벼워.
그 가벼운 몸놀림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걸 인정하겠니?
네 탓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그렇지, 접시 물에 코 박고 자빠졌다고
물이 살해도구가 되겠는가.)
그냥 많이 아프다는
누구에게 팔랑거림에 다쳤다고 말도 못해
더 아프다는 것을
알기나 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