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November comes again
어제 햇빛
좋다고 다 같은 느낌은 아니어서
어제 그 햇볕은 뭐 같다고 할까,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 같이"(영랑)?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지용)?
아니고,
어린 손녀 배아프다고 해서 문지르는 할아버지 손 같은,
다 난 것 같은 표정 짓는 계집애보다
언제 이런 짓 또 해볼라나 너무 좋아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할아버지 얼굴 같은,
그 넘치는 행복감이
무게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덮어주는
명주솜이불처럼
감싸주었다고 할까?
그랬어.
인디언 섬머
반짝 기운을 돌이켜도 이내 스러지고 말 것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겨울 준비 덜 된 이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위로인가.
(그런 영화도 있었다던데 내 알 바 아니고...)
인디언 섬머?
아닐 거야.
또 올 것이다.
오면 좀 길게 머물 것이다.
지금은 그냥 흑백사진첩 안에 끼여 들은
그림엽서 한 장이라고.
가을 지나갔으니까
겨울이라 할 것 없다.
노을이 고우면
엊저녁 노을이 곱다 싶더니
이렇게 비바람 치려고..
그렇게 시치미뗀 아름다움이
사나운 시절의 조짐인 줄이나 알라고.
오늘 비바람
쏟아져도 너무 한다.
하늘이 뚫린 것 같다.
(님 만나러 가는 날인데,
다리 끊어지면 어떡하나...)
꽃배나무 잎이 물들기도 전에
다 떨어져버리겠다.
준비가 잘 안된 줄은 알지만,
길들이기 얼차려도 아니고
이렇게 심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말이지,
조금 남아있던 꽃들 다 털어 버리니까
비로소 매끈 늘씬한 배롱나무 몸매에 눈이 가던걸.
그렇게 좀 떨어내야 할 것 같아.
치장, 위장, 변장 다 지우고 걷어내야 될 것 같아.
민낯을 보여주고 싶어.
낙엽이라는 것도 그래.
잎은 내년에 또 달면 되고
나무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많이 줄여야 할거야.
그게 사는 길일 거야.
어제는 시월,
오늘은 십일월.
늘 그렇게 온 걸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