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것은 가고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아는 사람들 많지 않을 것이다. 애국가의 3절.
국가에까지 나오는 가을하늘.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 해도 어디냐? 참 좋더라.
그믐이다.
차면 기울고 그런 거니까,
성(盛)하면 쇠(衰)하고 다 그런 거니까,
삭망고조(朔望高潮)라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보속(補贖)을 마친 것 같이 홀가분하다.
만삭공(滿朔空)이라는 말,
달이 차서 비워야 한다는.
낳는 것도 가는 것도 때가 차서 그래야지,
안 그러면 덜된 놈, 덜떨어진 인간 소리 듣는다.
때가 찼다는 것은 속이 찼다는 뜻이겠네.
때가 되었는데 차지 않으면 쭉정이.
가을은 잘 익어 뚝 떨어지는 철.
좋기야 하련만,
떨어짐, 떠남, 헤어짐은 그런 통과의례(rite of passage).
잠깐이라면
"Parting is such sweet sorrow"이라 할 것이고,
그렇게 아주 갈 것이라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런 맘이면 되고.
창호(窓戶)를 바르지 못해서 스미는 바람이 차다.
겨울철로 접어드는 길목 이름들이 예쁘다.
한로(寒露), 상강(霜降), 입동(立冬), 소설(小雪).
산책길이 하얗다.
밟으면 자국이 찍힌다.
기운이 쇠한 초목이 애잔한 모습으로
눈 마주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는 줄
모르지 않았는데,
대강 그렇다는 거지
사연은 다 다르니까,
"다 그런 거야" 하지말고
얘기 좀 들어줘라.
산책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