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잎은 떨어지고
오동잎이 아직 남아있더란 말이냐?
비파는 늦게까지 푸르나 오동잎은 일찍 시든다(枇杷晩翠 梧桐早凋)고 그랬는데.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이 온 줄 안다고 그랬는데.
아니, 그 긴 여름 어떻게 지나갔기에... 뭐 그런 것도 있었다.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공부할 것 없다, 하나 마나 마찬가지야.)
오동잎이 뭐기에...
그 노벨상에 버금가는 '애석'상을 받으신 분께서 밟으셨던,
그러나 마른 잎처럼 바스러지지 않은 어른이 그러셨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정말 알 수 없어요.
(김명숙 늘휘 무용단이 '알 수 없어요'를 풀었다고?
나야 여기서 가볼 수 있나...)
거기 그런 구절도 있더라.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내 참, 난 한국말 쓰고 싶어서 한국 가서 살고 싶어.
수십 년 동안 귀와 입이 시원하지 않았거든.
솔제니친이 모국어로 글 쓰자고 동토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리고 그 동탁 말이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승무')
아 내가 미쳐.
미치면(luna-tic) 달보고 짖거든.
그러면 동네 개들이 뭔지도 모르고 덩달아 짖는다고.
(악상기호로 tutti.)
一犬吠 二犬吠 萬犬從此一犬吠 呼童出門看 月掛梧桐第一枝
저것들이 왜 저러나 좀 나가 보라 했더니
별 거 아녀요, 달이 오동나무 꼭대기에 걸린 걸 보고...
(金得臣, '出門看月圖')
그 아저씨 갈필(渴筆)로 '먹 듬뿍'으로 잘도 노시네, 그리고 길게 웃기고.
한참 웃고 나니 다시 잘 수 없네.
네가 없기에 너를 느끼는...
슬픈 건 슬픈 거지만 마음 상할 것까지는 없다는데도(哀而不傷).
그런데 그 고결한 서화담도 그리움은 어쩌지 못했거든.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일부러 문밖에서 듣고 지었겠는가 마는
어디 진이가 보통이었어야 말이지.
내 언제 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그렇지, 제가 어쩌겠는가.
그래도 정작 헤어질 때는?
부질없는 짓인 줄 몰라서는 아니지만,
하루라도 더 잡아두고 싶은 것이다.
갈 때 가더라도.
今日相別後 憶君碧波長
그리움은 강물처럼.
누가 날 좀 잡아다오.
"꼭 가야돼?" 라고.
녹수도 청산을 못니져 우러 예어 가는고
왜 오동잎 떨어지면 '이별의 노래'를 불러야 할까?
어렸을 적에야 '님'의 정체가 미분화되었을 땐데,
그때 부른 노래도 그랬다.
오동잎이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고 갑니다
엄마 엄마 울고 간 잠든 하늘을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기분이 어째...
날 밝는 대로 노랑국화나 찾아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