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보낸 편지
날마다 한 구절씩
깊은 밤에 편지를 쓰게 해다오
(김남조, '밤 편지')
허락 받아야 할 것도 아니고
하실 것이면 하시지요.
그냥 쓰시지요.
그런데 그거 다 보내실 겁니까?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편지')
허면...
여러 줄 나가기도 전에
벌써 통했다는?
한 줄씩 마음을 나눈다는?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를 두셨네.
허면...
기다림이란 없겠네.
그래도
아니 오신다는 데
기다리는 이들도 있거든요.
저들도 사랑하는데.
그 사랑 남만 못하지 않은데.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 님도 탔겠지
님은 안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김동환, '강이 풀리면')
이건 뭐 '머피의 법칙' 같은 것도 아닌데
안 올 것이라면 올 것 같아 보여도 안 오더라.
그렇다고 기다림을 거둘 것도 아니고
뻔한 스토리인데 끝까지 앉아있더라.
'Fin'이 나온 다음에야 경건한 자세로 일어나고
워낙 영화 좋아하면 자꾸 가던 걸.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말지.
그만 말지.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아서
보내지 않을 편지라도 자꾸 쓰더라.
예전처럼 우체통에 넣으면 끝이어야 하는데
'취소하기' 기능이 있어선가
회수도 가능하더라고.
파치 상품도 아닌데 recall을 하고 나면
보세시장으로 흘러나갈 것도 아니고
다른 데 써먹을 수도 없으니
그게 많이 아깝더라고.
하나쯤 남길 만도 한데
전달되지 않을 것이면 큰 의미 없으니까.
그래도 남이 볼 것은 아니니까
내 마지막 편지는
못 보낸 봉서.
(김남조, '마지막 편지')
말이 많으면 그르치기 쉬우니까
그렇지만 전달하고는 싶으니까
썼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
그렇게 쌓인 가랑잎.
웬 새가슴?
사랑하면 섬세해지니까
과민하니까
작은 일에 상처받고
쉽사리 감동하게 되니까
대범할 수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