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낭인(浪人) 무사의 귀향
보름에서 이틀 지났는가
좀 이지러졌지만 아직 넉넉하다.
입동 지났으니
한월(寒月)이어야 하는데
찬 하늘에 시린 얼굴로
냉정한 표정 짓는 달이어야 하는데
물기를 머금어 부풀어 있다.
윤곽도 분명치 않고 그냥 빛 무리로 떠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보아 그런가.
소림사 무승의 보법 같은 걸음걸이로
40년 전 강호 초행 시 밟았던 길들을 지나갔다.
정동, 소공동, 무교동.
그렇게 첫 저녁을 지신밟기로 보냈다.
한 갑자 살았는데
내공은 그만큼 쌓지 못했다.
강자지존의 무림에서
이 정도 실력으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전철을 탔다.
저마다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전화하는가?
그렇게 다 연결되어 있는가? 늘?
다니러 올 때마다
휴대폰이 없어서 불편했다.
살자고 왔으니까
하나 구입했다.
걸 데가 없네?
받을 전화도 없고.
집 앞까지 왔는데
들어가기가 싫다.
나무 아래 잠시 앉았다 가자.
내가 올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가 부르르 떨며
마른 잎을 쏟아 붓는다.
봄에 그랬다.
만천화우(滿天花雨)로 낙화가 쏟아질 때에
일부러 쳐내지 않은 것이 치명적 실수이었다.
암기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도화살에 맞아서 한 동안 고생했다.
겨우 내상을 치유했는가 싶은데
이젠 낙엽이 비산하는구나.
보호해야 하는가?
또 맞지 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다쳤으면
큰 싸움에 투입되지도 않을 것이고
비무(比武)를 피할 핑계거리도 생기니까.
응, 이게 무슨 떨림?
아, 진동 모드.
누군가 나를 찾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