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苦吟)
도심의 공원이나 고궁 담 길만 걸어도 참 좋더라.
명승지 다녀오고 뻐기는 사람들 더러 있더라만
(기행문 고맙긴 한데...)
부러워하지 않기로.
오늘은 나가지 않으련다.
그 참 이상하지
이젠 ‘혼자’가 편안치 않더라.
어른의 다리나 주물러드리며 집에 있자.
마침 아파트 창 앞에
따지 못한 감과 모과가 달려있고
고개 빼고 내려다보면
아직 치우치 못한 가랑잎이 켜로 쌓였다.
뭐 서운할 것 없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니까
그냥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 가을에 절경을 보고나서 뭐라 하면 좋을까?
김시습은 금강산을 둘러보고
登山而笑 臨水而哭이라 했네.
그러면 됐네.
아, 그 소학교 시절에 배운 글 있지,
점찍은 듯이 산 산 산.
(애들이 뭘 안다고...)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그래, 그렇지 뭐.
“우와, 무지 멋지다” 하고나면 뭐 더할 말 남겠는가.
붓을 꺾을 것까지야...
음, 일단 대동강이 출현하니까 연이어 떠오르는 생각인데...
그 정지상의 ‘송인(送人)’ 말이지,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내 기분이 그래서 그런가
정말 괜찮던 걸.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 더욱 푸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데 슬픈 노래 일렁이누나
대동강 물은 언제면 마를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지거늘
대동강에서 님 보내는 노래 더 있지, 계월의...
大同江上送情人 (대동강상송정인)
楊柳千絲不繫人 (양류천사불계인)
含淚眼看含淚眼 (함루안간함루안)
斷腸人對斷腸人 (단장인대단장인)
젖은 눈을 서로 떼지 못하고 있는데
늘어진 버들가지가 가는 님을 얽어맬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천만 가닥 실버들의 용도는 잡아매는 것인지
그러나 성공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가
하나 같이 안 되더라는 얘기다.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ㄴ들 가는 춘풍(春風)을 잡아매며
탐화봉접(探花蜂蝶)인들 지는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사랑(思郞)이 중(重)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
(이원익)
아하, 그 버들...
잡지 못할 것이어든
봄마다 새 잎 내어
무정한 님 괴롭히기라도.
밤비에 새닙 곧 나거든 날인가도 녀기쇼셔
사람 맞았다가 보내는 게 일인데
밥 먹듯 차마시듯 새로울 것도 없는데
어쩌면 홍랑은 그랬을까...
가면 그만인데
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헤어짐이라는 게 참 큰 아픔인데,
이화우(梨花雨) 흩뿌리는 봄이거나
우수수 낙엽 지는 가을이거나
때를 가리지 않고
이별은 늘 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러니, 사는 동안 좋은 날 얼마나 될지...
人生看得幾淸明 (인생간득기청명)
(蘇東坡, ‘東欄梨花’)
그렇더라.
가까이 있다고 더 가까운 것 아니더라.
천리 천리아녀 지척이 천리로다
보면 지척이요 못보면 천리로다
지척이 천리만 못하니 그를 슬허 하노라
어느 쪽이 더 날까...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이오
마음이 천리오면 지척도 천리로다
우리는 각재천리(各在千里)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그러니 헤어지면 헤어지는 것이지만,
있는 동안은 가까워야.
가까울 때는 하나이어야지.
갈 사람이더라도
말은 해봐야지.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나는...
짐짓 간다고 그랬는데
잡지를 않더라.
그래서 떠나지 않아도 될 때에
떠났다.
그렇게 피보기를 여러 번.
그래도 그냥 시시해지면
떠나겠다는 말
또 나오더라.
“꼭 가야 돼?”라는 말
하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