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2)
상하기 쉬운 화물에는 ‘조심스럽게 다루시오’라는 딱지를 붙인다.
삶도 부서지기 쉬운 거니까 기도하며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그런다.
하긴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집은
얇고 깨지기 쉬운 유리로 만들어졌더라.
그리고 사랑,
섬세한 만큼 우아한 사랑,
가냘픈 만큼 아름다운 사랑,
보송보송 야들야들 말랑말랑 탱탱해서 만지다보면 손자국 나는 것,
눈부셔서 깜빡거리다 보면 이미 사라진 반짝거림 같은 것,
수은방울처럼 도르르 구르다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마는 것,
정말 취급 곤란한 것이다.
사랑은 익숙하고 편안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거북하고 가까이 하기 어렵지만
그 적당한 거리감 때문에
존경심이 가시지 않는 어른 같은 것.
모시기 불편하고 피로해도
머무시기를 바라는 귀빈 같은 것.
설렘과 떨림이 힘들어도
그것 없으면 사랑의 기쁨도 사라지더라.
잘 보이고 싶고
그래서 자주 섭섭하고
몰라주는 것 같아
억울함도 찾아오는데
사랑하면서
태연한 사람 있냐고?
사랑할 때는 참 다치기 쉽더라.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상처를 주고받게 되더라.
그러면?
“그러려는 게 아니었어(I didn't mean that).”로
해결되지 않더라고.
그건 춤추다가 파트너의 발을 밟고서
“내 발가락에 눈이 달렸나, 일부러 밟은 게 아니라니까”라는 심보.
“네가 그렇게 민감한 줄 몰랐어”라는 말은
제게 아픔의 책임이 없다는 무죄 주장.
책임이란 반응할 수 있는 능력(respons-ibil-ity)이란 뜻이니까
아픔의 감응력이랄 수 있겠다.
같이 있지 않아도 더불어 있음을 느끼는 게 사랑 아닌가.
그렇다면 한 쪽이 아픈데 전달되지 않는 것은 사랑 아니겠네.
내 안에 있는 너, 네 안에 있는 나
그 쌍시(雙柿)같은 한 몸이
아픔을 같이 누리지 않을 수도 있을까.
안고 싶어서 안은 게 잘못은 아니지만
너무 익은 과육이 쉽게 멍들 듯 상함이 있었다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좋고
눈짓과 가벼운 손짓으로 마음을 나눌 수도 있었는데도
과도하게 나아갔던 것에 대해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라는 뉘우침도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랑은
비교하지 않는 것.
옛사랑과도
친구들과도
친구의 짝과도.
있는 좋음이 부족한 듯 싶으면
택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잘못 선택한 것 같은 후회 때문에
비교하면서 모욕하지 말 것.
돌아보니 미안하기만 하다.
불편을 참지 못한다고
불편하게 한 것.
친절하지 않은 것.
무례한 것.
사랑이 지나갔어도 미안하고
사랑하면서 미안하고
사랑하기에 미안하고.
미안해요.
(앞으로도 미안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