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절

 

‘내가 좋아하는’이라는 말 다음에 이성의 이름이 나온다면 “엥, 어떤 사인데?”라는 호기심이 과도해져서 심부름센터에 의뢰할 정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옥자 명예교수라면 좋아할 만한 분인 것 같습니다. 주제로 책을 찾다 보면 저자에 주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야 그분이 대학 4년 선배라는 것도 알았고, 책을 읽다가 “우와~ 전문지식에 막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소통 기술도 그만이네.”라는 감탄이 있었다고 해서 팬레터를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관심이 발동하여 검색해보는 동안 정년을 맞아 강단을 떠나면서 ‘본교’를 향해 던진 쓴소리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조선후기의 문화사, 사상사를 전공하고 규장각 관장을 지낸 정 교수님이 이명박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2008.3 ~2010.9)을 맡은 것이 지조 있는 학자로서의 처신에 흠이 되는 경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후로 공적인 활동을 삼가왔던 그분이 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대해서 “인생에서 만절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은퇴 후에는 함부로 나서지 않았지만 이 문제는 너무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며, 한 말씀 하셨지요. 나름 뜨거운 가슴과 명석한 머리를 지닌 시민이더라도 “‘정상화’ 노력을 비판하는 것은 북쪽의 지령을 따른 좌파의 선동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정견을 지닌 분들도 더러 계실 줄 알기에 이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만절’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려고 공연히 정 교수님의 ‘한마디’를 끌어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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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만절이라고 하지만 주제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한자의 뜻을 지나치면서 힐끗 쳐다보기로 하지요. ‘蔓切’은 열매를 크게 하기 위하여 식물의 쓸모없는 덩굴을 잘라내는 일을 뜻합니다. 모래알만한 다이아몬드 파편을 수백 개 모은 것보다는 같은 무게의 한 개의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수십, 수백 배는 더 나가듯이, 과일도 실하고 큰 것 몇 개가 볼품없이 작은 수십 개보다 더 낫겠지요. 그런 것을 얻자면 가지치기, 덩굴 자르기, 꽃 훑기, 열매솎기 등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가을에 뭘 좀 얻었다는 뿌듯함이 있으려면 잘라내기와 버리기가 시나브로 진즉부터 진행되었어야 하겠네요. 방금 인생의 가을이라 했나요? 그게 晩節, 늦은 계절 혹은 늙은 시절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만년을 깨끗하게 보냄과 오래도록 지키는 절개라는 뜻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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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절의(節義)를 보존함을 추어주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어서이겠지요. 옛적에는 연로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을 치사(致仕)라고 했는데, 그러는 이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라에서는 예를 갖추어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제 때를 알아 물러남에 따르는 명예와 보상도 있었다는 거지요. 이제는 그러한 정치문화와 사회적 합의가 실종되었기에 물러나면 끝이라는 버티기 떼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일까요?  이미 현역에서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집권층이나 사회분열 세력의 한편에 서서 ‘사회 원로’로서의 영향력을 최대한 행사하겠다고 나대는 것도 못 봐줄 일이고요. {구국일념(救國一念)이라든가 하는 나섬의 명분을 내세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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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霜降)도 지났으니 아침에 섬돌 디디면서 서리로 덮인 하얀 뜨락을 보겠군요. 다른 꽃들 다 지거나 얼었을 텐데, 아하 빛을 잃지 않은 황국(黃菊)의 오연(傲然)함이라니. 해서 이정보(李鼎輔)는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했겠지요. 늦철에 피는 찬 꽃이 향기까지 고상하니 한화만절향(寒花晩節香)이라는 말“도 나왔겠고요. 늦가을 국화 같은 이 흔치 않은 건가? 보고 싶어 “청간한화만절인(請看寒花晩節人)”이라는 시구가 한숨으로 새어나왔으리라. 사무재(四無齋) 정즙(鄭楫, 1645-1728)은 자신을 경계하며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늙었다고 함부로 살지 말아야 해/ 서리 내릴 무렵 피는 꽃 더욱 향기롭네/ 석양이 그지없이 좋다면야/ 황혼이 비록 가깝다한들 무에 상심할 겐가 (莫以衰遲便放狂 寒花晩節轉芳香 但使夕陽無限好 黃昏雖近亦何傷)”

 

정옥자 교수는 괜히 나온 이름, ‘만절’이라는 말 들먹일 것도 아니었네. 그냥 “국화 옆에 서서.”